영화 <버킷리스트>는 2008년에 개봉된 영화다.
개성 넘치는 두 배우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주고받는 대화도 재미있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세계적 명소도 볼만하다.
한평생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가난하게 살아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와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이지만 괴팍한 성격 탓에 외톨이인 사업가 ‘잭’(잭 니콜슨)이 의기투합하여 버킷리스트 실현에 나선다.
그들이 만든 버킷리스트는 1. 장엄한 광경 보기, 2. 낯선 사람 도와주기, 3. 눈물 날 때까지 웃기, 4. 무스탕 셀비로 카레이싱 하기, 5. 최고의 미녀와 키스하기, 6. 영구 문신 새기기, 7. 스카이 다이빙하기, 8. 로마, 홍콩 여행, 피라미드, 타지마할 보기, 9. 오토바이로 만리장성 질주하기, 10. 세렝게티에서 호랑이 사냥하기 등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한 번씩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보았을 테다.
나도 버킷리스트가 있다. 세 가지다.
1. 죽기 전에 책 한 권 쓰기, 2.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걷기, 3. 벤츠 타기
이 세 가지 중에 첫 번째는 이미 이루었다.
2017년과 2019년에 각각 <책의 이끌림>과 <뇌가 섹시한 중년>이라는 책을 출간했으니 말이다.
세 가지 중에 첫 번째가 가장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장 빨랐다.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걷기인데, 조만간 도전해 볼 작정이다.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갈리아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위치한 대성당까지 800km 도보 순례다.
하루에 20~30km 정도를 걸으면 30일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테지만, 다행히 방학이 있는 직장이라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의지와 체력이다.
순례자의 길을 가야 하는 이유보다 가지 못하는 이유가 백 배는 되니 말이다.
세 번째 버킷리스트는 벤츠 자동차를 타는 건데, 사실 세 가지 중에 이게 제일 쉽다.
그런데 가장 고민이다.
돈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 보다는 왜 내가 벤츠라는 메이커의 자동차를 타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니 책을 써야겠고, 종교인은 아니지만 30여 일 동안 걷는 고난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는 순례길도 숭고한데, 벤츠는 마땅한 이유가 없다.
영화에서 카터와 잭은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프랑스 최고급 식당에서 근사한 식사도 하고, 아프리카 사파리를 여행하다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서보기도 한다.
인생의 끄트머리에 선 그들은 평생 소원했던 일을 하나씩 실천 중이다.
그런데 막상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갈수록 만족감보다는 어딘지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가족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봉사...
멋진 곳을 가는 것, 신기하고 황홀한 것을 경험하는 것, 진귀한 음식을 먹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을 진정으로 채울 수 없다는 거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소유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소중하다는 깨달음이다.
나의 세 가지 버킷리스트는
결국 나를 보라고 하는,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이 진실인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잘난 체 하고, 순례자의 길을 완주하여 관심을 끌고, 벤츠를 몰며 폼 좀 잡아 보자는 심산이다.
속물적, 소유적 리스트다.
소유적 자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꼰대다.
그래도 벤츠 타고, 물 좋고 산 좋은 곳, 맛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문득 나에게도 '이게 전부가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래, 그 때가 올 때까지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고
까짓것 일단 그렇게 살아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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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