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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 생각

꼰대 생각 20_글쓰기는 중독이다

by 배정철

글쓰기는 일종의 중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추동, 정치적 목적 등 글을 쓰는 근사한 이유를 네 가지나 들었지만 빠뜨린 게 있다.

'안 쓰고는 못 배긴다.'라는 이유다.

글을 직업적으로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끔 쓰는 사람도 그렇다.

나 같이 어쭙잖게 글을 쓰는 사람도 절대로,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글을 쓰게 된다.

절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작가나 유명인들도 반드시 되돌아온다.

글 쓰는 사람이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건, 골초가 담배 피우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랑 같다.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개인끼리 주고받는 메시지나 포털 등에 댓글 다는 것은 어려워하지 않더라도

어떤 주제에 관해 글을 쓸려고 하면 첫 문장부터 좀처럼 나가지 못하는 경험은 누구나 있다.

초등학교 국어에 '쓰기'가 있고, 중고등학교 과목에 '논술'이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쓰기와 논술에 약하다.


그렇다면, 글 쓰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일까?

타고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연습하고 훈련하면 잘 할 수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있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누가 인정해 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책을 두 권 낸 나름 작가이니 그렇다고 치자.)


우선, 많이 그리고 자주 써야 한다.

글을 잘 쓰려면 우선 많이 써야 한다.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우선 글을 쓰는 게 좋다.

자기만의 노트에 손으로 쓰던, 노트북에 저장을 하던, 블로그 등에 남기든 어쨌든 많이 써야 한다.

처음엔 한 두 줄짜리 문장의 글이 문단이 되고, 그러다 보면 한 바닥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러니 잘 쓰고 싶다면 우선 쓰자.


둘째, 자신의 글을 공개하는 것이 좋다.

혼자만의 기억과 추억을 간직하는 글이 아니라면 자신이 쓴 글을 다름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이 좋다.

요즘엔 글을 공개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 많아 사실 쓰기만 하면 공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악성 댓글이나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상처 받는 걸 더 염려해야 하는 시대이긴 하다.

그래도 동창회나 동호회 밴드, 블로그 등에 글을 올리면 다른 이들의 반응이 오고, 그게 글을 쓰는 또 하나의 힘이 된다.

쓴 글을 다시 보면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글이 좋아진다.


셋째, 다른 사람을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공개한 글,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글을 많이 읽는 게 좋다.

나 같은 경우는 책을 읽다가 글감이 떠 오르는 경우가 많다.

읽고 있는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메모를 하거나 간단하게 글을 써 둔다.

나중에 다시 보면서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글을 만들어 간다.

다른 사람의 글이나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을 찾아 기록해 두고, 흉내 내고 따라 하다 보면 글이 좋아진다.

가끔은 '뭐 책 쓰는 게 별거 아니네, 이런 것도 책으로 나오나?' 싶은 책도 있는데,

그런 책은 나도 책을 낼 수 있겠구나 싶은 뜻밖의 용기를 주기도 한다.


넷째,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데, 자신의 글을 읽고 스스로 '뻑' 갈 줄 알아야 한다.

뻑간다는 건 아주 만족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러냐고?

내가 쓴 글에 내가 뻑간다는 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얼굴 붉어지거나 창피할 일도 없다.

'와우, 내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썼지?, 이런 걸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한테 이런 재능이 있었구나, 대단해~' 하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용기를 줘야 한다.

처음 해보면 사실 좀 웃기긴하다. 그래서 혼자 웃을 때도 있다.

그래도 자뻑을 할 줄 알아야 글을 계속 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힘든 걸 어찌 계속할 수 있겠나?


어젯밤에 집에서 책을 읽다가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태국으로 파견 근무를 오면서 생각했던 것을 어떻게 실현하면 되겠는지 그림이 그려졌다.

아침 식사(방콕한국국제학교는 아침, 점심 두 끼를 학교에서 제공한다.)를 마친 후, 중고등부 학생들을 모두 강당에 모았다.

같이 책을 써보자고 제안했다.

태국의 속살을 제대로 알려주는 ‘오감으로 느끼는 태국’이라는 주제로 같이 책을 내보자고 했다.

10여분 제안 설명을 하고 마치는데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내일 점심시간에 책을 쓰는데 관심 있는 친구들만 다시 모이라고 했다.


이젠 글쓰기 중독증을 아이들에게도 전염시킬 모양이다.

할 수 없다.

중독증에 걸린 교장 잘못 만난 지들 복인 걸 어쩌나.

그 중에 몇 녀석은 단단히 중독시켜 봐야겠다. 자뻑을 잘 하는 녀석들로.



<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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