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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 생각

꼰대 생각 22_말려도 소용없다

by 배정철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의 용량이 커지면서 사회생활, 언어발달, 학습, 문화의 전파 등이 가능해져 현생 인류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뇌가 지금처럼 발달하는 데는 뇌에 있는 거울 뉴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거울 뉴런은 자코모 니촐라티, 비토리오 갈라세, 마르코 이아코보니 등 이름도 낯선 과학자들이 원숭이의 뇌 영상을 촬영하다가 발견했다.

원숭이가 땅콩을 먹고자 손을 뻗을 때에 전두엽에 있는 전운동피질의 특정한 뉴런이 발생하는데,

땅콩을 먹기 위해 버튼을 누르거나 레버를 누를 때도 뉴런이 발생한다고 한다.

땅콩을 먹기 위한 자발적 행동에 뇌의 특정 부위에 전기가 반짝 켜지는 것이다.


그런데 거울 뉴런의 놀라운 점은 다른 원숭이가 땅콩을 집기 위해 손을 뻗는 모습을 지켜볼 때도 발화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스스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다른 원숭이가 하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는 뜻이다.

그런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켜보는 원숭이 자신의 뇌 속에서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서 다른 이의 마음을 읽는다는 거다.


공감 뉴런 또는 달라이 라마 뉴런이라고 불리는 것도 있다.

바늘로 내 피부를 찌르면 아픔을 느끼는데, 감각 통증 뉴런이 발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찔리는 것을 지켜볼 때도 이 뉴런이 강하게 발화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 뉴런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가장 깊이 공감하는 대표적인 분이 달라이 라마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 뇌속의 거울 뉴런과 공감 뉴런은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고 한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상대방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내는 것 즉, 타인의 마음을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나를 도우려는 것인지, 공격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기만하려는 행동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거울 뉴런과 공감 뉴런은 타인에 대한 공감, 모방을 통한 학습을 가능하게 했고 빠른 문화의 전파 등 사회성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다른 영장류도 그렇지만 특히나 인간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었던 건 사회성 덕분이다.


최근 뉴스를 접하다 보면 수 십 만년을 거치며 진화해 온 인간의 뇌 기능이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졌나 보다.

원숭이도 다른 원숭이가 하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다는데,

우리 인간은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해가 될지,

다른 사람의 행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도통 모르는 모양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확산의 위험이 큰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모임을 강행한다.

법으로 처벌을 강화했음에도 음주운전 사고는 여전하고,

다른 이유도 없이 그저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길가는 낯선 사람을 마구 때리는 이도 있다.


더 걱정스러운 건, 거울 뉴런과 공감 뉴런의 발화가 '진영'이라는 듣보잡에게 맥을 못 춘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이런 중증 환자는 주로 여의도 국회 근처 정치인들 사이에서 발생하여 감염의 경로와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일반인들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확한 통계를 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최근의 그 고약한 코로나 19 보다는 전염성이 몇 배는 강하지 싶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 전염병의 치료를 위한 '진영질병관리본부'가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걱정하는 이가 별로 없다.


이런 저런 걱정으로 간혹 밤잠을 설친다.

그러다 문득, 내 몸 속 저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이기적 유전자가 번쩍하고 발화를 한다.

조용히 입 다물고 살아라고 긴급 신호를 내 보낸다.

하기사 내 수준에는 맞지도 않은 인간 뇌의 기능 저하가 어떻고 저떻고 걱정한답시고,

이 놈 저 놈 싸잡아 욕을 하다가 여태껏 사이좋던 사람이랑 등이나 지고,

공직에 있는 사람이 구설에 올라 괜한 화를 자초할 일이다.

'그래, 그냥 지금의 개천에서 가붕개로 살자~'


그러다가도

‘나만 편하게 살면 된다는 비겁한 놈이구나, 세상의 불의에 찍소리도 못 내는 형편없는 놈이구나.’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든다.


그래서 꼰대는 말려도 소용이 없다.


<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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