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정철 Apr 27. 2022

욕 안 먹는 인사

교장의 시선_04

인사가 만사라는데     

인수위에서는 교육부를 폐지할 거라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왔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아남았다. 한국교총이 교육부를 살렸다고 한다. 교육부 직원들은 아마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을게다. 1990년 이후,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정체성이 모호한 이름으로 불리는 수모를 겪기는 했어도 교육부 폐지는 어림도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타국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도교육청에 유초중고의 교육을 전부 맡길 수 있는 간 큰 정부가 있을까.  


새 정부 교육부 수장이 지명되었고 곧 청문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다.  다른 정부, 다른 장관 후보자와 다르지 않게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나라의 장관을 할 정도면, 아니 후보자로 지명이 될 정도면 선임자들의 전철은 최소한 밟지 않겠지 싶은데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닌가 보다. 하긴 누가 청문회에 설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며 살겠나?       

   

시도교육청 단위에서도 매년 인사가 두 번 있다. 3월과 9월. 학교 이동, 교감 승진, 교장 승진, 장학사나 장학관 전직 등 적게는 수십에서 수천 명씩 자리를 옮긴다. 보통 일이 아니다. 그 많은 인원을 넣고 빼고 적절히 배치하는 일이 어디 쉽겠나. 인사 업무를 하는 분들 모두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데 인사 발표 후에 칭찬은 고사하고 욕 안 먹으면 다행이다. 사실 욕 안 먹는 인사가 있기는 한가.

    

형님 먼저

‘혁신학교 7년째 시골에서 교감하고 있는데도 교장 자격연수를 안 보내준다. 4년짜리도 연수를 가는 판국에’

‘나보다 교감 자격을 3년을 늦게 받은 사람이 먼저 교장 자격연수를 간다고?.’

‘작년에 교장 자격 받았는데 올해 받은 사람이 먼저 교장 발령 났네, 휴~.’

교사에서 교감될 때는 모든 걱정, 힘든 과정은 이제 다 마쳤다 싶은데 또 스트레스다. 나보다 한참 뒤에 오던 사람이 어느새 앞서간다. 교감 자격도 늦게 받았고, 교감 경력도 적은데 교장 자격 연수는 나보다 먼저다. 도대체 인사의 기준이 뭔지, 왜 매번 내 앞에서만 기준을 바꾸는지 억울하고 분통하다.     

 

근무경력, 연구점수, 벽지학교, 근무평정 점수 등 소수점 이하 세 자리까지 다 챙겨서 교감됐다. 그런데 갑자기 선배 후배, 형님 동생이다. 아름다운 장유유서의 유구한 전통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나이와 경력을 고려했다는데, 이를 어쩌나. 갑자기 나이를 더 채울 수도 없다. ‘교육청에서 시키는 일 군말 없이 잘하고, 따지거나 대들지 않고 고분고분한 교감 근평 잘 주는 게 뭔 잘못?’이라고 하면 또 할 말은 없다. 너무 따지고 들면 버릇없는 놈, 어른도 모르는 놈으로 찍히기 십상이라 속만 끓인다.


머리가 좋거나 마음이 곱거나

해군 중령으로 근무하던 친구가 최근 예편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여 년을 군 생활을 하다가 대령으로 진급을 못 해 계급 정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감, 교장에게는 계급 정년이 없다. 교감을 1년만 하기도 하고, 10년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교감을 10년씩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운이 나쁜 거다. 교감 자격 취득 이후 3년이 지나면 교장 자격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게 복불복이다. 해마다 교감 선발 인원이 달라져 교장 자격 연수 지명에 자주 정체가 생긴다. 왜 그럴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인사 담당자들이 머리가 너무 좋아서다. 매년 퇴직하는 교장의 수는 정해져 있다. 불의의 사고나 명퇴 등으로 변수가 생기기는 하지만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교감을 몇 명이나 선발해야 할지 뻔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교감 선발 인원을 달리한다. 즉 예측 수요보다 많이 선발한다.

     

자격연수나 발령 시기가 안정적이면 인사 담당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 근무평정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되면 인사 부서가 힘이 없어진다. 권력이 없어지는 거다. 그러니 적당히 정체가 생기도록 조절을 해야 한다. 밀렸다 풀렸다 예측을 할 수 없게 해 놔야 청탁도 들어온다. 이렇게 조절하는 게 어디 쉽겠나? 머리 나쁜 놈은 절대로 할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마음이 너무 고와서다. 교감 자격 대상자 서열 명부를 작성해 놓고 보니 마음이 쓰이는 누군가가 선발 예정 순위보다 한참 뒤다. 이걸 어쩌나. ‘그 사람까지 커터 라인을 정하지 뭐. 난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원래는 해당이 안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박 난 사람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교육청에서 고생하는 동료 장학사들도 챙겨야 한다. 이러다 저러다 보니 선발 인원이 당초 계획보다 많아진다. 그런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민원 전화도 안 온다. 그 어렵다는 욕 안 먹은 인사를 드디어 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외동포 ‘교육’을 걱정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