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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May 25. 2022

이런 교장, 저런 교장, 요즘 교장

교장의 시선_05

이런 교장

"나는 교장다운 교장을 할 겁니다. 내가 꼭 해야 할 중요한 것만 결정하게 해 주세요."

A 학교에 부임하신 교장이 교감 내게  말이다. 교장이  결정할 것만 가져와서 의논하고, 웬만한 일은 교감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얘기다. 좋게 보면 교감을 믿고 맡기겠다는 의미고, 삐딱하게 보면 귀찮은  교감 네가  해라,  그런 말이다. 나는 좋게 받아들이고 해석했다. 교장이 그러겠다는  교감이 별수 있나. 교장 들이받으면 교감 머리만 깨진다.


같이 근무한 2년 동안 처음 말씀하신 그대로 교감을 끝까지 믿고 일하셨다. 대부분의 일은 교감이 선생님과 의논해서 처리했고, 교감이 결정하기 어려운 일은 찾아뵙고 의논드렸다. 선생님이 교장실에 직접 들어가는 일을 최소화했는데 선생님들도 좋아라 했다. 지금 가만 생각해 보면 교감을 믿어 준 것도 같고, 일만 많이 시켜 먹은 것도 같다. 가끔은 안 져도 될 책임감이 느껴지고 내가 교감인지 교장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교장 된 지금, 그때처럼 하려고 애쓴다. 


저런 교장

A 학교에서 3년을 근무한 후에, 교감 정원이 한 명으로 줄어서 원치 않게 근무지를 B 학교로 옮겼다. 새 근무지에서 만난 교장은 이전 학교의 교장과는 사뭇 달랐다.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고, 교감의 건의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기친람이다. 


6학년 수학여행 코스 문제로 논란이 좀 있었다. 수학여행 코스는 6학년 부장이 학생들 의견도 듣고, 선생님들과 협의도 하고, 학부모들로 구성된 수학여행 활성화 위원회 의견도 들어서 정한다. 아침 회의에서 6학년 부장이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했다. 교장은 수학여행 코스에 대해 이런저런 코멘트를 했다. 특별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거의 정해진 내용에 대해서 이견을 내셨다. 에버랜드를 첫째 날 가느냐, 마지막 날 가느냐의 문제였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그걸 바꾸면 여러 가지를 다시 변경해야 하는 번거로운 문제가 생긴다. 


회의할 때는 아무 말을 안 했다. 마치고 나와서 교장실에 혼자 다시 들어갔다. 웬만하시면 6학년에서 정한 것을 지지해 주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많은 과정을 거치고 고민한 내용이니 선생님들을 믿고 그렇게 해 주십사 했다.  수학여행 코스는 교장이 결정하는 것이니 본인이 말한 대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교감으로 승진해서 나갈 때, 선배들이 그랬단다. 선생님을 절대 다 믿지 말라고.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6개월 그 학교에서 근무하고 교육부에 파견 신청을 해서 세종시로 갔다.     


A 학교 교장은 부장이나 선생님이 결재나 보고를 하러 가면, 교감이 뭐라고 했는지 물었다. 일단 그대로 결재하고 교장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교감을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교감이 똑바로 하는지 가끔씩 챙기는 거다. 설명드리면 대부분 이해를 하셨지만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다. 

B 학교 교장은 본인의 생각과 다르면 결재를 하지 않고 수정을 하게 했다. 교감의 의견은 자주 무시되고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의논하러 오면, '교장한테 가서 직접 물어보고 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A 학교 교장보다 B 학교 교장이 훨씬 힘들었지 싶다.      


요즘 교장

그때로부터 7~8년이 지났다. 나를 포함해서 요즘 교장들이 공통으로 걸린 흔한 질병이 있다. 코로나보다 더 광범위하게 확산한 질병인데 '결정장애 증후군'이라고 한다. 그때는 그나마 결정이라도 했는데 요즘은 그걸 힘들어하고 두려워한다. 주위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려고 해서 그런 건지, 결정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고자 해서 그런 건지, 좋은 게 좋은 세상에서 갈등 없이, 마찰 없이 지내고 싶어서 그런 건지...  

"공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교육청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작년에는 어떻게 했나요?"

"선생님들끼리 잘 의논해 보세요."


이유가 뭘까? 왜 이렇게 변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 후 결론이 나왔다. 교육부와 교육청 탓, 선생님 탓, 학부모 탓이다. 아무튼 내 탓은 아니다. 더 자세하게 설명은 못한다. 그냥 내 잘못이 아니다.  

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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