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쓰는 2024년 회고

못 버리는 미련한 사람에서, 선택과 집중을 이해한 경영자로 성장했다(?)

by 최새미

뭔가를 선택, 집중한다는 말에는 뭔가를 포기한다는 말이 숨어있다.


말이 쉽지, 행동하기는 참 쉽지 않다. 특히 아주 중요한 학교 회사 등 나의 다음 스텝을 그릴 땐 더더욱 그렇다. 아주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도 수능 직전 선택과 집중에서 실패해 멘탈이 크게 흔들려 재수를 하거나, 취업시즌에는 분야 관계없이 아무 직종, 아무 회사에 다 도전하며 '하나만이라도 걸려라'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one main thing을 발견하기는 어느정도 적당한 난이도의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everything else를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 포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하던 것을 계속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하던 것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중요한 일을 배우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이 일이 중요하다고해서 기존의 하던 것을 다 버리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며 사이드잡에 가치를 두고 one main thing으로 여길 순 있지만, 이 사이드잡이 너무 귀중해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심지어 회사를 욕하면서 다니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 일을 해낸다면, 정말로 수행한다면, 다음 스텝은 분명 성공적이 될 것이고, 그 것을 해낸 사람은 한 발자국 더 성장하게 될 것이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는 열 몇 명 인력만으로 2개의 프로덕트를 운영한다는 태생적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 화장품을 B2B로 해외바이어에게 공급하는 플랫폼 SEOUL4PM과 화장품 만들기를 공급하는 플랫폼 MAYK. 전자에서 후자의 아이템이 발굴됐고, 고객군은 분명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겹치지는 않는다.


전자는 캐시와 볼륨을 담당했고, 후자는 미래 먹거리를 담당했다. 당연히 투자는 후자의 아이템으로 받았고, 전자는 집중도는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2024년 상반기, SEOUL4PM이 코스닥 유니콘 실리콘투와 함께 조명을 받으며 메인 아이템으로 떠올랐고, 시장 관심도, 경쟁 강도도 높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여러가지로 어려웠지만 2024년에 뭔가 해냈다! 글로벌 소비재 시장의 특징은 넓고 광활하다는 것. 우리팀은 레거시가 가득한 이 분야에서, 프로덕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했고, 만들었고, 작동시켰다. 그 결과 전세계 70개국의 바이어들이 들어와서 상품을 소싱해가는 플랫폼으로 2024년, 급성장했다고 자부한다. 이 업계에서 유일하게 IT프로덕트로 B2B 무역을 작동시키는 팀이다.


2024년에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첫째, 무엇이 메인 아이템인가.

둘째, 무엇이 성장 동력인가.


첫째는, 답이 위에 은연중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SEOUL4PM으로 바뀌었다.


히스토리로 얘기하자면 이렇다, 고객개발 담당이었던 멤버와 대표인 나는, 뭔가 우리에게 필요한게 영업이 아니라, 비지니스개발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업이 비지니스개발에 포함되는 것 같은 개념이지만, 비지니스개발은 약간 더 큰 관점에서, 파트너십을 짜고, 고객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덕트에 녹이는 것까지 문제해결적인 일들이 더 더 많다고 가정했다. 영업팀과 별개로 나를 포함한 비지니스개발팀을 만들었고 SEOUL4PM과 MAYK의 여러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작동시키는 데 집중했다.


SEOUL4PM은 organic하게 고객이 유입되고 있었고, 이 흐름을 타고 이들이 가입 후 인증받는 것, 인증받고 가격을 대하는 법, 상품데이터를 대하는 법, 물류파트너를 물색하는 것 등이 팀의 성과가 됐다.


MAYK는 package 상품을 구성하고 온보딩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발주전환율을 20%까지 끌어올리며, 기존 레거시가 못하던 온라인 고객 전환율을 크게 올렸다. 작년에 15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도 결제액 기준으로는 6~7억까지 늘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기에 무엇을 선택해야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MAYK 구조를 짜는데 힘을 기울였는데, 막상 돌려보니 속도가 너무 느렸다. 치명적으로 개선이 굉장히 어려운 지점들이 몇 군데 존재했고, 개선 아이디어들이 도출됐다. 이 아이디어를 실천하면 중요한 부분들이 커질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 같은 것에도 도달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SEOUL4PM은 고객 유입이 너무 빠르고 거래완결도 너무 빠른 것이다.. 문의로 인한 유입 비율로 따지면 10:1 정도.., 거래완결속도로 치면 일주일 vs 6개월 수준.


적은 수의 인원으로 운영할 때 결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SEOUL4PM 위주의 볼륨 성장을 타깃팅했다. MAYK는 크고 재밌는 건들이 많이 예정되면서, 멤버 대부분은 SEOUL4PM에 집중하는 것으로 변경했고, MAYK는 몇명에게 완전히 고객을 맡겨놓는 구조로 재편했다.


그렇다면, 둘째 SEOUL4PM으로 시장에서 놀 것이라면, 무조건, 레거시들과 아주 다른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정의한 레거시 플레이어의 속성은 다음과 같다.
1. 해외 거점을 기반으로 진출한다.
2. 재고를 많이 쌓아두고 브랜드 소싱력을 기반으로 돈을 번다.


그래서 이들의 웹사이트는 신뢰도 구축 + 문의 획득 채널에 불과하다. Contact point만 넣어두고, 고객을 획득한다. 프로덕트라기보다는 랜딩페이지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또 재고도 무지하게 많이 보유한다. 한 브랜드당 5억 정도, 사입해서 판매한다.


똑같이 플레이 하면 무조건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수천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 / 비상장사이고, 우리는 투자+지원금 누적 10억 남짓밖에 안받은 스타트업 조직이다. 게다가 이런 전통적 방식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시적으로는 특정 브랜드,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다보니 한번에 나가리 되기가 너무 쉬운 구조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대표님 몇 분은 300억까지 매출 올리다가 하루 아침에 전액이 사라지는 경험도 했다. 거시적으로는 이 구조가 포스트코로나 이후의 무역환경 / 케이뷰티 니즈변화를 잘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무역 사이즈도 작아졌고, 케이뷰티 니즈는 다변화됐다. 기존처럼 골라서 가는 방식은 매우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을 쟁여둘 수 없고, 모든 곳에 창고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라인 강자' 딱 하나만 타깃팅해서 가자고 정의했다. 온라인에서 들어와서 검색하고 사는데 있어서 지장이 없도록, 해외 지역의 제약이 없고, 재고 제약이 없고, 소싱력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구조를 재편했다. 아직 자동과 수동이 섞여 있지만, 고객들이 들어와서 사고, 데이터가 쌓인다. 4월부터 유입된 인바운드 고객은, 어느새 3000 고객사가 넘었고, 주문건수는 월 400개가 넘었다.


물류사 여러 개 쓰기.. 3PL데이터 연동하기.. 등등 이슈가 산재하지만,

아무튼 이런 방식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결정해서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 조직에는 분명 레거시를 껴안아가며 자동화하던 부분이 있었고, C레벨이 전통 무역방식을 하다보니 조직 구성과 프로덕트적인 문제 해결이 쉽지가 않았다. 주요 인물의 지향점이 다를 때, 조직 구성이 그것을 뛰어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물론 내가 더 설득을 잘했다면,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상사기능을 분리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멤버가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각자 독립적이면서도, 메이코더스는 SEOUL4PM 플랫폼 운영사로, 상사기능은 SEOUL4PM의 대리점 형태로 업의 형태를 바꾸어 지속가능성을 찾았다. 몇 멤버가 상사기능으로 분리됐고, 서로 필요할 때 찾으며 관계를 만들어 보기로 협의했다.


지금까지는 두 가지 점이 너무 좋다. 첫째, 상사기능이 작동하는 원리를 깨달았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세부적이고 인사적인 구조에 대한 것이다. 둘째, 프로덕트 조직으로써 조직이 바뀌었다. 문화도, 생각하는 방법도, 사람도 그렇게 채우게 되면서 동질성을 기반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어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다. 결국 양단 모두 많은 것을 배우며 좋은 길로 가게 될 것이라 짐작한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포기

SEOUL4PM의 상사 플레이를 완전히 우리조직내에서 수행하지 않도록 포기했다.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을 유입시키는 방식, 관리하는 방식, 거래를 하는 방식을 모두 포기했다. 구글과 chatGPT로 들어오는 인바운드 고객, 그리고 그들이 프로덕트로써 SEOUL4PM을 탐색하고, 사는 경험을 하는데 집중하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사는 경험을 위한 비즈니스구조를 만들어내고, 파트너십을 강화한다.


이는 거의 세 번째 핵심멤버와의 분리를 경험하는 아주 큰 결단이었는데, 나로서는 큰 매출을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내놓는 것의 문제를 벗어나, 그보다도, 오래도록 지냈던 멤버와의 분리로 진통과 고민이 꽤 큰 작업이었다.


SEOUL4PM을 프로덕트 만들기의 메인으로 앞세우면서 MAYK는 오히려 프로덕트 만들기를 훨씬 줄이는 계획으로 수정했다(이건 포기까진 아니고;;) 이미 프로덕트적으로 구성이 더 많이 된지라, 주어진 구조안에서 SEOUL4PM과 유사성이 있는 유통망을 중심으로 고객개발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리고 사람

아마도 태어나서, 사람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 해가 아니었나 한다. 나도 사람들에게 실망을 많이 주었고, 사람들에게 실망도 많이 느꼈다.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가 나갔거나 내보냈고, 일을 대하는 태도나 fit이 내가 생각한 기준과 맞지 않는 경험을 극단적으로 많이 한 해가 아니었나 한다. 구조를 만들어 해결해야할 일도 있었고, 내 기준을 당연하게 여긴 나의 문제가 더 커서 나를 컨트롤하면서 해결해야할 일도 있었다.


인건비가 비싼 대한민국에서 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좋은 인재에게 좋은 대우를 하며 모셔오는 것이라는 심플한 룰을 깨닫게 될 때까지 지불한 비용이 너무 컸던 것 같다. 나는 딱,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좋은 인재가 들어왔을 때 너무 좋아진다. 그게 기존의 많은 힘든 일을 완전히 상쇄한다. 같이 머리와 손을 맞대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생각한다.


케이뷰티의 인기 때문인지, 우리팀의 고유성 때문인지, 새로운 인재들이 메이코더스의 문을 먼저 두드려주었고, 2025년 상반기에 함께 하기 위해 세팅하고 있다. 함께할 것을 염두하고 찾아온 사람은 나에게 물었다.


"인재상이 무엇인가요?"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내가 개똥철학으로 글을 써본 적은 있는데, 질문으로 훅 들어왔다. 스타트업의 본질은 사람. 그 사람이 누구냐 어떻냐에 따라 승패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이니.. 사실 핵심 문제가 아닌가.


떠오르는 말을 했다.

"호기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냥 한 말이지만, 내가 막연히 평소에 했던 생각인 것 같다. 궁금하고, 궁금해서 파보고 싶고, 이렇게 저렇게 해결해 보고 싶은 사람. 호기심이 강하면 해결을 하고 싶은 마음도 강하다. 충분히 타당하게 방법을 생각하고 논리력과 실행력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몰입하고, 더 좋게 만든다. 그리고 그게 참, 스스로 행복하다.


그래서 아이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너무 함께 하고 싶다. 누가 나를 본다면, 내 표정도 항상 그랬으면 좋겠다.


결국 사람 이야기로 회고를 마친다. 2025년은 더 좋은 사람들과, 더 큰 시장에서, 더 재미있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타트업 인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