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내가 손톱만큼 작은 존재로 느껴질 때

by 최새미

보통은 자의식이 과잉됐거나, 스스로를 과장되게 인정하거나, 뭐 그런 인품이나 성품과는 아무 상관없는 (우스꽝스러운) MBTI로, 사주로, 별자리로, 혈액형으로 이해되는 창업가 성향이 있다. 그래서 운칠기삼으로 매우매우 성공한 창업가가 얼마나 우악스럽고, 사람을 무시하고, 돈을 함부로 쓰고. 그런 사례는 너무 많이 본다.


나도 그런 MBTI, 사주, 별자리, 혈액형을 보유한 창업가다. 운칠의 칠이 아직 안따라줬고 기삼의 기가 아직 약한 관계로, 성공은 아직 멀어보이고, 최대한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업가들은 각기 자기 색깔대로 살아내고 있겠지만, 적어도 위의 속성과 관련해서 내가 다른 창업과들과 좀 다른 점은 굉장히 현명하며 참을성 있는 사람들이 성장과정에서 주변에 많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외로운 길을 걷고 있지만, 약간 덜 외롭달까.


너가 잘못됐어, 너가 더 겸손해야해, 라고 혼내면서 가르치는 스승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냥, 알게한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대표님들을 상대로는 처음 나의 이야기를 하고난 이후의 일 때문이다. 허락을 받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 브런치를 이미 공유드렸고, 드리고 싶은 말도 있어서라서, 익명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한다.


한 대표님께서 조언을 구하는 이메일을 주셨다.

프로젝이 엎어졌고, 슬럼프가 왔다고.


호기심있게, 재미있게 창업을 하고 계시냐는 물음을 던졌던 발표였다. 새벽에 한참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말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려움이 있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10년 전, 지금은 어엿한 작가님이 된 어떤 분과의 에피소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평생에 걸쳐 패기넘치거나, 이기적이거나, 말을 이상하게 한 사례는 너무 많았을 거 같은데, 이 에피소드는 정말로, 단언컨대 태어나서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일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대중매체에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기자라는 글쓰는 업을 하고, 그 업을 종료하고 갓 석사과정을 시작했을 때였다. 지인의 지인이던 그는 지인을 통해 문의를 해왔고, 통화를 했다. 나는 뭐라고 했냐면.


대학에 일단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대학에 가면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고, 경험의 폭을 많이 넓히실 수 있을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술 쪽 일을 한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내심 알고 있었지 않을까? 잘난체와 자만심 같은 게 깔려 있다는 것을. 대중매체에 내 이름 바이라인을 걸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꽤 좋은 대학교를 나오고, 어려운 언론사 시험에 붙었었다는 그런 선배스럽고 멘토스러운 것들 말이다.


그 2년 후인가, 나는 지인의 지인이었던 이 분의 책을 보게 됐다. 너무 어릴 때 아빠가 아팠다는, 뭘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일한 가족인 자신이 돌보는 상황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글이었고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 사각지대에 대한 절절한 상황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책이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머리를 텅 하고 맞은것 같았다. 이토록 내가 하찮게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런 말을 뱉을 수가 있지.

이런 사람에게 경험을 더 하라는 헛소리를 지껄였다고? 내 경험이 뭐나 된다고.


그리고 미안하게도, 10년이 지나 이 말을 들은 지인은, 성찰하는 모습 좋다고 웃고 만다. 저 소리를 들은 10년 전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지인의 지인은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고 말았다. 허허 참. 이렇게까지 자만감에 쩔은 소리도 지껄이는 나에게, 너 진짜 최악이야, 라고 말했다면 나는 발끈해서 더 최악의 소리를 지껄였을지도 모르겠다.


더 부끄러운 일은 피하기 위해, 조언을 구하는 대표님께는 사업적으로 이러시는게 어떻냐 말씀은 못드렸다. 그저 내가 그랬듯, 퍼블리 창업자가 그랬듯, 지인의 지인이 그랬듯, 글을 한 번 써보시라고 말씀드렸다. 브런치도 공유드리고 ㅎㅎ


이 이야기를 들은 멤버는 팀원들의 상황도 그렇게 생각해보라 하였다. 순간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여러 순간들이 떠올랐다. 허허 참, 멀리 성수역을 지나는 2호선 지하철을 쳐다보게 됐다. 참, 그냥 알게 한다니까. 그냥 알게해줘서 고맙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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