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꼭 잘해야 하나요?
요즘 회사 일이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고, 야근하는 횟수도 빈번해지고 있다. 오늘까지 해야 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떤 업무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이 일 했다가, 저 일했다가 허둥지둥하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업무를 쳐내는 속도가 영 붙지 않고, 쌓여만 가는 업무에 정신이 팔려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데드라인에 맞춰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려 다시 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일잘러’라고 불리고 싶었던 나에게는 이 시간들이 꽤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척척 해내는 직장동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라고 자책하다 보니 일적으로도 힘들고, 감정적으로도 우울했다. SNS나 유튜브에서 ‘일을 잘하는 방법’을 아무리 찾아보고, 책을 읽어봐도 막상 일할 때는 허둥지둥하며 실수를 반복하는 내 모습이 점점 ‘일잘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요즘 매체에는 ‘일잘러’가 돼야 한다며 일잘러가 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중에서는 일을 잘하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일을 못하는 사람은 마치 실패자인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왜 일잘러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어른이 되고 회사에 들어와서도 일을 ‘잘’해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야근, 주말출근도 밥먹듯이 했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일잘러’라는 타이틀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로, 새로운 팀의 리더의 역할을 부여받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일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다. 일잘러와는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일을 못했었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욱 당황하고, 조급해져만 갔다.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최근에는 어떻게 이 정도로 일을 못할 수가 있나 싶다.
그날도 일을 못한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퇴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일을 꼭 잘해야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잘 못하면 내 커리어와 인생은 실패한 걸까?
집에 가는 동안 끊임없이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꼭 일을 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일을 잘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을 못 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자책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과 못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회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인 기준이니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나는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결정했다.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일을 즐기면서 하는 것은 내 마음가짐에 따라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어도, 나도 사람인지라 회사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거나, 일이 너무 많을 때는 다시 스스로를 자책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일 못하는 나를 견디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 회사에서는 일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회사 밖에서는 작가로서 글을 쓰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를 충만하게 만든다.
그다음으로,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지하철역 1번 출구에서 파는 타코야끼, 당면 사리를 듬뿍 넣은 엽떡처럼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나를 채운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틀어놓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내 몸의 에너지가 채워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영원한 일잘러도 없고, 영원한 일못러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견디다 보면 일을 잘하게 될 수도 있고, 일을 잘하던 사람이라도 도태되고, 발전하지 않는다면 몇 년 뒤에는 일못러가 될 것이다. 그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즐기면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과를 인정받고, 원하는 결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