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배움은용서입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창가를 치며 후드 덕 거리는 소리가 좋습니다. 아파트 갈색 보도가 빗물로 번들 거립니다. 짙어가는 신록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바다 너머는 뿌연 안개빛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왔습니다. 편안합니다. 기분 좋은 토요일 아침입니다.
아침에 빵집에 갔습니다. 20여분 기다렸습니다. 갓 구워내는 빵 냄새가 좋았습니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비 내리는 아침에 빵 기다리며 책 보는 남자. 그림이 괜찮은 것 같지 않습니까? Educated, 몇 장 남은 마지막 장을 넘겼습니다. 가슴이 멍합니다. 알 수 없는 투명한 무엇으로 속이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가족, 종교, 부모의 신념으로 억압된 우리의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니 내가 행한 폭력 일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아이의 행복과 불행, 우리 부모가 만들어 내는 것 아닙니까?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그물로 아이들을 옭아 매어 왔습니다. 아이의 온전한 인격이 아니라 부모를 닮은 아이, 부모의 분신과 자랑거리로 만들려 했는지 모릅니다. 고유의 인격 The person이 아니라 누구 닮은 비슷한 존재 The likehood of person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Tara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짙은 고뇌의 안갯속을 걸어왔던 젊은 여자 아이입니다. 트라우마. 밤마다 런던의 길거리를 뛰쳐나가 괴로워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책하며 정신박약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Cambrige 대학의 박사 학위로도, 모든 노력으로도 여전히 거기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 내리는 빵 냄새 가득한 오늘 아침. 그녀는 내게 나타나 번민의 자책에서 벗어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제의 잘못을 들취내고 입증시키는 것이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며 죄책의 고통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고통을 가해자에게 다시 돌리는 게 정당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 알았습니다. 내가 문제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타인을 향한 증오와 가책. 그것은 상대가 해결할 수 없는 내 문제입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원망을 버리고 자신의 문제로 돌아서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But vindication has no power over guilt. No amount of anger or rage directed at others can subdue it, because guilt is never about them. Guilt is the fear of ones own wretchedness. It has nothing to do with other people.'
이제 과거의 그녀가 떠나갔습니다. 그녀를 괴롭히던 그 16세의 여자아이는 그 옛날 거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변화되었습니다. A NEW SELF. 새로운 나로 태어났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 수 있었습니까? 변화는 함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끝없는 자아의 성찰. 공부란 무엇입니까? 학문이란 무엇입니까?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것 아닙니까?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기존의 생각과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찾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변화를 인지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change, Remade. 그럼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까? 진정한 배움. Educated입니다.
She left me. She stayed in the mirror. The decisions I made after that moment were not the ones she would have made. They were the choice of a changed person, a new self. You could call this selfhood many things. Transformation. Metamorphosis. Falsity. Betrayal. I call it an edu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