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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Sep 04. 2021

선에 대한 믿음

안나 카레니나

이성으로는 안돼. 이성은 오만이고 우둔함이지. 이성은 속임수야. 이성은 사기지.


그래 너는 이성이 대단하다고 느끼지. 이성은 논리적이고 추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 넌 그게 과학적이라 믿고 있지 않니? 지성을 가진 사람이 유희를 즐기는 놀이라고 넌 뻐기고 있잖아. 소위 배운 사람의 최대 무기는 논리, 추론이지. 그건 따지는 거잖아. 사소한 것, 의미 없는 것 까지도 내 머리의 요릿감이지. 어떻게 자를까? 이 방향으로. 그러면 어떤 맛이 날까? 이렇게 하면 모양도 좋고 폼도 나고 효율적이고 쉽고 매력이 있네.


아 그래. 태어나서 교육받고, 진학하고 학위 받으며 단 한 가지 배운 건 따지고 비교하고 재고, 그래서 다른 사람 위에 서는 거였어. 그것 잘해서 상 받고, 학위 받고 좋은 직장에도 들어갔지. 그리고 지금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어.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비교하며 깐깐하게 살라고. 그게 성공의 비결이라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얼마나 화내고 나무랐을까? 좀 생각하며 살라고. 그게 최곤 줄 알았지.


그런데 세상살이는 이성으로 안 통하더군. 항상 변수가 생겨 다르게 흘러가던 걸. 생각대로 되면 이제는 이상해. 알 수 없는 세상이야. 그렇게 따져도 안 되는 데, 왜 우린 이성이라는 이상한 방법만 배우며 따지며 살았던 거지.


때로 삶에 대해 생각할 때도 있지.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온 건지,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유명한 철학 서적도 뒤적이고, 소설도 읽어 가며, 생각하고 따지지. 고상한 말로 사유하지. 생각의 깊은 숲을 지나며 때로 즐겁고 때로 슬프기도 해. 그래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어. 행복과 의미를, 감동과 환희와 내 삶의 목적을. 난 그때도 생각했어.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다고. 통찰과 결단이 부족하다고. 내 인성이 나약하고 지혜롭지 않다고. 생각할 줄 모른다고. 그러나 언제나 후회와 실망이 나를 따라 들어왔어.


난 오늘 이상한 말을 들었어. 톨스토이가 그의 책 안나 카레니나에서 말했어. 레빈을 통해서 말이야. 이성은 사기라고. 이성은 우둔함이라고. 이성으로 우린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따지고 분석하고, 소위 과학이라는 것이 우리 삶을 설명할 수 없다고. 무의미의 바닷속에서 우리를 건져 내지 못한다고. 거기에서 헤매다 죽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 권총으로 자기를 쏘기도 하고, 줄에 매달리기도 하고. 안나 카레니나는 열차에 뛰어들기까지 했잖아. 아니면 그냥 모든 것 다 버리며 허무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물처럼 살아가고 있잖아.

레빈은 오늘 말했어. 진리는, 모든 것을 여는 열쇠, 행복은 내 안에 있다고. 그래. 다른 곳에서 그렇게 논리로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어. 내 안에 버젓이 들어앉아 있는데, 바깥에서 온갖 라이트 켜고 이성이라는 이상한 물건 가지고 찾고 있었으니. 내속에 있는 그것은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야. 아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추론할 수 없는 것이지. 그것이 뭔지 알아?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선에 대한 믿음이지. 농부가 레빈에게 말했어. '누구나 알듯 진리에 따라 하나님 뜻대로 사는 거지요. 사람은 제각각 이라니까요.' 내 속에 웅클이고 내제해 있던 선의 발견. 그것이 우리의 이성이 할 수 없는 행복과 의미를 가져 준다는 거야.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심오한 철학과 사상도, 인간의 위대한 사고와 추론과 이성도, 절대 가져다줄 수 없는 행복과 의미. 그것을 내속에 옛적부터 내제 한 선에 대한 믿음이 가져다줄 수 있다니. 그래, 하나님은 이미 그것을 내속에 심어 놓으신 거야.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한 해답을 이미 우리는 가졌던 거야. 그래 단테도 베드로 앞에서 그랬지. 실체로 인정하는 것. 즉 믿음이 사랑이라고. 대 문호 톨스토이의 마지막 문구가 아직도 생생히 들려오는 것 같아.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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