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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Sep 08. 2021

리얼리즘

삶은 곧은 것이 없어


꾸불불 했다. 곧은 길은 없었다. 뱃가죽 바닥 깔며 온몸으로 근육 긴장하고 혓바닥 좌우로 널름거리며 뱀처럼 기었다. 평지는 없었다. 오르고 내리며 미끄러지고 굴렀다. 가시에 긁히고 돌부리에 파이고 선혈의 자국으로 피부는 불그스러 웠다. 도착해야 할 그곳에 대한 희망도 없다. 밝고 찬란한 미래도 없다. 단지 힘들여 오늘을 살뿐이다. 거친 손등과 굵은 손마디. 그리고 깊은 주름만이 힘든 삶을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

먹을 것이 없었다. 죽도록 일하고 죽도 먹지 못했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붓기로 얼굴은 크다. 푸석푸석 해서 손가락으로 누르면 깊게 들어가 구멍이 뚫릴 것 같다. 자식 먹이려고, 굶지 않으려고 서로 싸우고 물어뜯고도 했다. 의 참혹한 수탈 속에서도, 소망조차 꿈꿀 수 없어도 강인한 생명을 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소나무다. 꾸불꾸불 올라간 비틀어진 나무다. 거친 비바람으로 하늘 향하지 못했다. 허리 펴고 하늘 보며 커 나갈 수 없었다. 땅바닥에 붙어 뼈마디 굵은 허리뼈로 가지와 잎사귀 지고 인채 그늘 드리우며 새끼들, 가족 근사해 왔다. 엊그제 찾은 신불산 고봉, 땅바닥에 붙어 드러누운 소나무는 바로 어제의 우리 부모님이다.




봄이다. 온통 신록의 축제다. 연한 색깔들의 조화.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생명의 색채. 화사한 벚꽃도 땅에 내렸다. 노란 개나리도 떨어졌다. 산중에는 진달래가 온산을 수줍게 물들이고 있다. 넓게 펼쳐진 우리의 토지는 땅 깊은 곳에 숨어있던 생명을 다시 끌어내고 있다.


오가타는 말했다.
너는 이상이 없다고. 왜 찬란한 미래가 없니? 왜 순수하고 곧은 감성을 추구하지 않나? 너는 왜 희망이 없니? 저기 활짝 피고 아름답게 떨어지는 벚꽃을 보아. 이 세상은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야.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야. 인생 저 꽃처럼 화려하게 피고 사라지는 거야. 우리 일본인들. 그래서 내 몸 주저하지 않고 버릴 수 있는 거야. 우리가 애국심이 많아서 가미가재가 되는 줄 아니? 우리가 명예 그렇게 소중해서 목을 자르고 배를 긋는 줄 아니? 인생은 화려하기 때문이지. 죽음도 그 인생이쟎아.
넌 왜 그리 꼬불꼬불하고 비틀어졌니? 넌 곧게 하늘 향해 뻗지 못하니? 넌 희망도 소망도 없니? 삶은 아름다운 거잖아.

사내대장부 같고, 긍정적이고 멋있어 보였다. 죽음도 초연하는 순응. 그것 앞에서 부끄럽고 부러웠다. 나는 저런 이상, 저런 순수, 저런 기상 가질 수 없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의 독립은 여전히 요원한 것인가? 암울한 미래뿐이다.



오가타. 너는 너 자신을 속이는 것이야. 넌 집단 감상주의에 빠진 것이야. 결핍의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소설 같은 환상 속으로 너희를 쓸어내린 거야. 삶은 곧은 것이 없어. 생명은 그림처럼 반듯하게 공장 제품처럼 나오는 것이 아니야.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절규하고, 행복한 것이 우리 인생이야. 죽음이 아름답다고. 아니야. 죽음은 고통이야. 죽음은 최고 비극이야. 피가 흐르는 것은 물이 흐르는 것과 다르지. 그것은 최고의 아픔과 절규잖아.


너희는 집단 이상주의에 빠져있어. 환상 속에 갇혀 있어. 네가 불쌍해. 삶은 리얼리즘이니까. 우리는 그 삶을 꾸려가는 리얼리스트이니까. 나는 그 리얼리즘 위에 꿈을 덧붙일 거야. 그것이 내가 꿈꾸는 행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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