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만났습니다. 나이가 제법 든 박사과정 제자입니다. 10년 전부터 가까이 지내는 건설회사 대표입니다.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를 만나면 좋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열린 자세로 듣는 품성이 자리를 유쾌하게 합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 앉았습니다. 신록이 짙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제법 길게 앉아 대화를 즐겼습니다.
몇 년 전에 읽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와 Cephalus의 대회가 생각났습니다. 젊음이 떠나간 노인의 안타까움을 아쉬워하는 내용입니다. 나는 킨들을 뒤적이며 그 내용의 본문을 찾았습니다. 2,500년 전 아테네의 현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공감하며, 우리에게 주는 깊은 메시지에 감동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며, 풍족한 과학문명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다른 세대보다 높은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BC 500 년의 사람들은 우리를 뛰어넘는 지성과 예지를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집에 돌아와 우리가 나눈 '국가'의 본문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가 Polemarchus집에 갔습니다. 그의 아버지 Cephalus는 소크라테스를 무척 반기며 방문을 환영하며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 육체의 즐거움이 사라지니 자기에게는 즐겁고 매력적인 대화가 최고라고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습니다.
내게는 나이 든 분과 말씀을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노인은 내가 꼭 걸어가야 할 곳을 가 보신 여행자 이시니까요. 내가 가보지 않은 그 길은 평탄하고 쉬운 길이 든가요? 아니면 바위 투성이 어려운 길이었습니까? 저는 시인이 말하는 'Threshold of old age' 노년의 문지방이라는 시간에 도달한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삶은 끝으로 갈수록 더 힘든 겁니까? 그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 주던가요?
나이 든 사람에게 던지는 소크라테스의 겸손하고 따뜻한 그리고 큰 예지의 질문입니다. Caphalus는 자기의 생각을 말해습니다.
내 나이 사람들은 서로 몰려다닙니다. 마치 같은 깃털을 가진 새 처럼요. 그리고 모여서 말합니다. 잘 먹을 수가 없어. 술을 마실수도 없어. 젊음의 즐거움도 없어. 그리고 사랑도 할 수가 없어. 좋은 시간은 한때였고 다 지나가 버렸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야. Life is no longer life.
고대 아테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하고 이렇게 닮았을까요? 소크라테스 주변의 친구들도 우리와 비슷한 말을 하며 늙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소포클레스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나는 나이 지긋한 시인 소포클레스를 잊을 수가 없어. 내가 질문했지. 사랑은 나이와 어떻게 어울립니까? (How does love suit with age?) 당신은 예전과 똑같습니까?
소포클레스는 말합니다.
평화로워. 나는 탈출했어. 미친, 광포한 주인(a mad and furious master)에게서 부터
나이는 우리에게 변하라고 말하는 신호인지도 모릅니다. 열정, 사랑, 그것은 젊음의 특권이지만, 노인에게는 나를 미치게 하는 못된 주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나이가 주는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미친 주인, 포학한 주인(a mad furious master)은 누구입니까? 거기에서 해방되고 풀려 나올 때 진정한 자유와 쉼이 있을 겁니다. 내려놓음이 진정한 해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