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의 계절이 왔다. 연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노랑과 녹색이 섞인 연한 초록색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대지와 나무는 그녀를 세상에 내어 보낸다. 나는 연두를 여성 명사로 부르고 싶다. 가녀린 색상 너머로 그려진 잎맥이 너무 예쁘다. 햇빛을 받은 입사귀는 맑다. 앙증맞은 입 다무림이 사랑스럽다. 양지바른 곳 함께 모인 곳에서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바람에 하늘 거린다. 연두 잎은 가녀린 줄기 위에서 리듬을 타며 논다. 대지에 훈풍의 낌새가 나타나면 나무는 그것을 금세 알아차린다. 겨울 갈색 줄기 표면에 연두 물이 입혀지기 시작한다. 큰 키 자랑하는 버들에서는 아지랑이 연록이 하늘을 벗 삼아 피어오른다. 옅은 생명들이 소곤 거리는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다.
봄날 아침을 걸었다. 황사인지 미세 먼지인지 하늘이 뿌였다. 옅은 금속 타는 냄새도 나는 듯하다. 심해진 대기 오염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맑고 푸르고 청명했던 우리의 강산과 하늘은 어디로 갔는가? 그래도 세상은 꽃 잔치가 시작되었다. 사람이 만든 재앙 속에서도 자연은 개의치 않는다. 벚꽃은 방금 몽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작은 연보라 등이 머리 위에서 찰랑 거린다. 겨울 갈색 세상이 환하게 밝혀진다. 볼 것이 많다는 봄이 다시 왔다. 볕이 덜 드는 응달에 있는 벚나무도 붉은 몽우리로 물들어 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연분홍 체리 꽃을 피울 것이다. 개나리는 이미 만개하였다. 노란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봄 빛을 밝히고 있다. 사진을 찍었다. 노란 꽃등이 내 얼굴을 밝힌다. 많이 올라간 이마가 더 번쩍 거린다. 눈주름 잡힌 함박웃음을 웃었다. 진달래, 목련, 개나리가 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린다. Silent Voice로 공간은 가득하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 God's nearness을 우리는 본다.
세상은 전쟁의 소식으로 가득하다. 미국은 이란을 공격했다. 이란의 10,000여 곳을 미사일로 타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상전을 위해 병력이 이동 중이다. 서로를 비방하고 서로가 거짓을 말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벌써 4년째 전쟁 중이다. 북한군까지 이 전쟁에서 부지기수로 죽었다. 아이와 같은 순박한 북한 포로를 TV영상에서 만나고 우리 모두는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가자는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70,000여 명이 죽었다. 아니 살해된 것이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팔레스타인이 살고 있다. 왜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는 나라들이 이렇게 전쟁을 벌이는 걸까? 정말 화가 나고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부커상 수상 스리랑카 작가 Kalunatilaka는 'Seven moons of Malli Almeida' 에서 이렇게 비난하고 있는지 모른다.
왜 미국인, 유대인, 무슬림은 항상 전쟁을 할까? 아기 때 할례를 당하면서 생긴 무의식적인 분노 때문이야.
자연은 봄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지면, 세상은 소란스럽고 어지럽다.
1년 전 이맘때였다.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교수 몇 명이 친목회를 만들고 이름을 지었다. 연두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때가 연두색이 퍼져나가는 봄이었다. 연두는 겨울이 남긴 침묵 위에 조심스럽게 번져가는 숨결이다. 그리고 연두는 새해의 첫머리라는 뜻이 있다. 은퇴를 맞는 교수들은 희망을 이 이름에 담고 싶었는지 모른다.
연두 같은 젊음으로 우리는 여기를 찾아들었다. 그리고 봄 같은 청년을 마주하면서 지금에 다달았다. 거칠게 바람이 불 때도 많았다. 뜨거운 햇살에 힘들 때도 있었다. 연한 초록빛 입사귀는 짙게 색을 입었다. 더 크고 단단해졌다. 그리고 때로는 찢기고 상처에 자국을 남겼다. 이제 우리는 봄색이 아니다. 신록을 지나고 한 여름을 견디어 낸 물들고 바랜 가을 잎사귀 인지 모른다. 시간은 과거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떠나가 버렸다. 신학자 본회퍼가 말한 것처럼.
문이 철컥 닫히고, 나는 너의 발걸음이 서서히 멀어져 약해지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손을 뻗어 기도한다. 연두야, 나에게로 다시 돌아와 다오. 예전의 그 색깔이 아니라도 좋다. 맑고 사랑스럽고 예쁘지 않아도 된다. 떨리던 두근거림이면 된다. 솟아오르는 즐거움이면 된다. 은총에 감격하면 된다. 사랑을 품으면 더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