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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Sep 17. 2021

2019 어느 수업시간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실크로드라는 과목입니다. 이번 학기에 처음 개설되는 교과입니다. 서양사와 전혀 무관한 내가 감히 주제넘게 덥석 맡았습니다. 2년 전부터 할까 말까 기웃거리다 이번에 큰 용기를 냈습니다. 사실 그동안 세계사, 철학, 문명 등을 공부하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2천 년 전 사람들의 생각과 활동을 지켜보면서 전율처럼 놀란적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와 무관치 않은 동서양 교류의 길.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내가 느낀 즐거움과 감동, 학생들께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일천한 지식 인지라 준비하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읽고 느끼는 큰 즐거움으로 한주 한주 버텨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수업 주제는 초원 실크로드였습니다. 흑해에서 우랄산맥, 알타이 산맥으로 이어지는 초원의 유목 기마 민족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등자를 발명했던 스키타이 족이 동서의 문명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황금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랑거리 신라의 금관도 바로 초원의 실크로드를 타고 내려온 산물입니다. 초원의 이 길을 따라 칭기즈칸은 서방 벌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폴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쳐들어 갔습니다. 이집트까지 진출했습니다. '개와 쥐의 외피를 쓰고 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도륙'하는 몽골족을 보고 유럽인들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노보고르드 한 수도사에 따르면 '그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메뚜기처럼 나타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셨다. 그분께서 우리의 죄를 벌하시기 위해 그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동방에서 오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종말의 대 재앙이었습니다. 그들은 몽골인을 Tatar라 불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통스러운 지옥 타르타로스를 끄집어낸 것입니다.

1241년 카칸 오고타이 사망으로 몽골 지휘관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자 유럽은 겨우 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와 프랑스 왕 루이 9세 등은 즉시 사절단을 보내 화친을 꾀 합니다. 그때 카칸은 화를 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합니다. ' 하느님이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에게 자비를 베푸느냐?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곳까지 모든 땅이 내게 복속되었는데 교황의 하느님이 무에 그리 중요하냐?' 그리고 카칸의 권력과 '몽케 탱그리( 영원한 하늘)'의 권력을 결합한 도장을 찍은 편지를 전달했다 합니다.

나는 이 인장, 도장 이야기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깊숙이 찍힌 절대 불변의 도장. 몽테 탱그리.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불변의 약속. 옥새가 찍힌 서류를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 전 새벽에 공부한 아가서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Place me like a seal over your heart, like a seal on your arm.' 내 마음에 당신의 사랑을 인장처럼 새겨 달라고, 그리고 당신의 깊은 도장을 팔뚝에 깊게 새겨 달라는 겁니다. 마음으로 사모하고 육체로 모든 것 바쳐 사랑하자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싱그러운 5월. 사랑이 베어 나오는 가정의 달 이 봄에, 우리 가족과 부모님께 사랑의 인장을 찍어 드리자 말했습니다.

부모님께 편지 쓰자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전해 드리자 했습니다. 이제 어버이날까지 8일 남았으니 지금부터 생각하고 사랑을 표현하자 했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 앞자리에 앉은 한 성실한 여학생이 말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편지를 읽을 수 없는데요.'

수업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는데 가슴이 더 짙게 져려 옵니다. 왠지 모를 아픔으로 가슴이 죄는 것 같습니다. 그때 난 순간적으로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대응했다가 다른 학생들 이목으로 여학생이 곤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편지를 읽을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세상 가셔서 못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병세가 위독해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 마음의 섬세한 울림. 가냘픈 고동. 가슴과 세포가 말하는 사랑의 노래, 종이에 펼쳐진 떨림을 읽지 못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전달될 수 없는 편지를 가슴에 묻고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수업하며 그 학생에게 난 도리어 깊이 배웠습니다. 이번 어버이날. 편지 쓰겠습니다. 마음을 풀어놓겠습니다. 부모님, 읽으실 수 없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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