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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Sep 11. 2021

시간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말도 없이 조용히 지나갑니다. 귓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시간은 모호한 추상적 개념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지만, 그것은 분명 실체입니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순간은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계 바늘은 분명 돌고 있고 또 다른 순간의 원운동을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잡히지 않는 이상한 흐름. 단 1초도 우린 그것을 잡을 수 없지요. 그것은 영원히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유체의 흐름일까요? 거대한 공간의 이동일까요? 왜 소리도 이 흐르고 있는 걸까요? 귓가에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것이 시간의 소리입니까? 아니면 전파들 지나가는 소리인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실체들. 그것은 시간 안에 들어 있지요. 아인쉬타인의 말대로 시간의 축이 숨어 있나요? 시간의 변수에 반응하고 있는 건가요? 저기 멀리 있던 통통배가 바로 앞을 통과하네요. 자동차가 광안대로를 지나갑니다. 시간이라는 이상한 개념 위에 세상이 존재합니다. 시간이라는 그물망이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며칠 전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그 자리에 다시 서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인데, 강대상도, 벽돌도, 교회 건물도, 생각도, 열정도, 사람도 모든 것이 똑같은데 시간만이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이상합니다. 동일한 좌표에 물체는 정지해 있는데, 보이지 않는 잡을 수 없는 모호한 정체만이 그렇게 바쁘게 돌고 돌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시간은 얼굴에 주름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빼앗아가고, 멜라닌 색소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피부 탄력도 빼앗겼습니다. 이제 근육도 빠지고 피부는 흐느적거립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것이 어떻게 우리 소중한 것을 이렇게 가져갈 수 있나요?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껍질만이 아니네요. 생각도 변색되어 버렸네요. 열정도 식어 버렸어요. 꿈 많던 푸른 마음도 이젠 그 색이 아닙니다. 싱그런 햇살이 비추던 밝음도 어두워졌어요. 대신 세상의 거친 자국들만  내속에 무수히 박혀  있네요. 시간이라는 놈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왜 우리를  꼼짝 못 하게 합니까? 감히 저항조차, 몸부림조차 치게 못하게 하는 그 존재는 무엇입니까? 필멸의 인간! 그 말은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소멸하지요.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나 봅니다. '조상들이 갔던 그 길'.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 정말 적절한 표현이지요. 지금도 시간이 흐르고 있네요. 난 이렇게 머물러 있는데 보이지 않는 천구는 계속해 돌아가고 있네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을 책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안락하고 편안함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희려 하찮게 여겼습니다. 내면의 소리와 열정이 그에겐 중요했습니다. 육체의 극심한 고통, 그것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그저 관심 밖 부수적 거추장일 뿐입니다. 자기 혼자만의 무한한 고립. 그것을 원했습니다. 바로 Passion 입니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한 열정 말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위대한 사랑을 그려냅니다. 우주와 생명과 원초의 자연과 그 순수, 사랑을 말입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습니다. 거친 시간의 흐름에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피상적인 허탄에서 빠져나오고 싶습니다. 단순하고 순수하고 싶습니다. 시간에 항복하지 않는 것, 시간에 방치되지 않는 것. 시간이 내 생명을 앗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 거추장 거리는 껍데기에 시간을 바치지 않는 것.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끝없이 돌고 도는 허망에서 우리를 빼어 낼 수 있나요? 어떻게 해야 그 무한한 공허를 벗어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밖에 없습니다. 혼신을 다해 지켜야 할 순수 밖에 없습니다. 겸손히 내면을 향하는 시선밖에 없습니다.  크신 날개 그늘에 숨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향한 믿음 그것밖에 없습니다.



Belief in God. Without that
we should have been lost.
 
- The moon and Sixp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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