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여인

by 동이화니
갇힌 여인


푸르스트가 그의 연인, 알베르틴을 사랑하는 이야기다. 너무도 사랑해서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그는 밀회를 즐긴다. 발베크 해변에서 피어오른 그녀의 매력을 자기 공간으로 가져왔다. 숨이 멎을 듯한 사랑으로 그녀를 가지고 싶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굿 나이트 인사에 목말라했던 잃어버린 사랑을 알베르틴 속에서 찾고 싶었다. 내 곁에 숨긴 행복을 뽑아내는 마술 같은 현존,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생각까지 완전히 공유하고 차지하고 싶었다. 푸르스트적 질투. 그것은 정신까지 포함하는 완전한 소유,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 걸은 쟁취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런 사랑을 갈구하는가? 내 생각을 완전히 쏟아내고 그녀의 정신까지도 나를 가득 채우고 싶은 열망.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교감. 푸르스트는 그것을 위해 알베르틴을 가두어 버렸다. 남들이 찾을 수 없는 그곳에, 자기만의 비밀 공간에, 온전히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비밀의 문 속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그래, 나도 푸르스트의 사랑을 하고 싶다. 세포까지 교감하는 DNA까지 결합되는 완전한 사랑을.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할 수 없었다. 끝없는 질투가 그녀를 의심했다. 그녀의 생각과 마음 밑 알갱이들이 자기에게로 온전히 향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가지려는 불같은 질투가 자기를 괴롭혔다. 갇힌 여인이 아니라 갇힌 남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내 깊숙한 곳에 무엇을 숨겨 두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진정으로 숨기고 싶은가? 남들이 건드리고 만질 수 없는 '갇힌 여인'이 나에게는 무엇인가? 나에게 일고 있는 불안이 무엇을 나의 가슴에 깊게 숨기게 하고 있는가? 나는 날마다 남들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남들이 가질 수 없게 마음 창고를 그냥 채우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깊이 감추고 있는 '갇힌 여인'은, 그녀를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감추고 있는 것, 내가 '갇힌 남자'라는 것을 너는 알고 있는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60년 인생을 흘려보내면서 그가 한 일이란 그저 숨기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 것뿐이다. 소유하고 쟁취하고 쌓아두고 남몰래 꺼내 먹고 만지며 즐기려 했다. 여태껏 살면서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무언가를 가두는 것이라는 것만을 배우며 살았다. 아내를, 자식을 사랑이라는 말로 내속에 밀어 넣어 가두어 두었다. 그리고 내 뜻에 순종하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애완용 동물 인양 그렇게 정의하고 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까지도 나를 위해 가두려고 그렇게 애써 왔는지 모른다. 이제껏 살면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과 해결되지 않는 미제들, 이것들의 원인이 바로 그들을 가두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가? 갇힌 여인, 갇힌 아내, 그리고 갇힌 내 딸들. 어리석은 남편과 아빠의 편협한 이상한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만들고 있는 많은 오류들. 오늘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보고 소스라치며 놀라고 있다.


가두면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도망치다 달아난다는 사실. 가두면 끝없는 오해를 생산해 내며 깊은 갈등만이 나타난다는 사실. 가두면 절대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 가두면 예쁜 그녀 만의 매력이 사라진다는 사실. 개성과 미모와 사랑은 자유롭게 날아다닐 때 가꾸어진다는 사실. 발베크 해변에서의 알베르틴의 아름다움은 푸르스트의 집에 몇 개월 갇혀 버릴 때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았던가? 움직임은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확대되는 것이고, 과거에서 미래로 끝없이 확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두는 것은 언제나 단일한 귀결을 만들며 의혹만 부풀리기 때문에, 그래서 갇힌 것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그는 오늘 생각한다.




가두지 말자, 사랑하는 사람을
열어 해방시키자.
그건 나를 가두는 것이라고.
나를 꼼짝할 수 없는 심연의 감방으로
내 던져 버리는 것이라고.
결국 내 가족을 바르게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살리고 넉넉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나간 시간이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를 아프게 찔러 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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