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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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그는 지금 동해남부선 철길에 들어섰다. 해운대 미포에서 출발하여 청사포, 송정에 이르는 4km 해안선을 따라가는 철도다. 2013년 이 철도가 폐쇄되기 전까지 철도가 달리던 곳이다. 아름다운 달맞이 언덕을 휘감으며 달리던 이 철도는 그의 추억도 담고 있다. 이 철길을 걸으며 20살의 낭만을 누린 시간도 있다. 해운대 바닷가에서 저 너머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는 열차에 마음도 빼앗기곤 했다. 기타 매고 친구들과 이 기차에 몸 실고 대변에 캠핑 간 적도 있다. 지금부터 40년 전 일이다. 열차가 폐쇄되고 덩그러니 철길만 남은 길을 그는 좋아했다. 혼자 그 길을 더듬으며 끝도 없이 계속될 만나지 못할 철로를 응시하며 걸었다.

철길을 멀리 바라보면 원근법이 생각난다.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두 철길, 열심히 걸어 저기 끝에 다다르면 두 길이 만날 것 같다. 우리 앞에 펼쳐진 3차원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시각적인 평면 기법이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여전히 똑같은 간격이 벌어져 있을 뿐이다.


그는 아내와 30년을 같이 살았다. 기쁨과 아픔 같이 하며 긴 시간을 걸어왔다. 때로 가까이 팔장끼며 다정하게 길을 걸었다. 어떤 때는 철길처럼 떨어져 앞만 보고 걸었다. 걸어가는 것 보면 애인인지 부부인지 알 수 있다 한다. 앞뒤로 한 발짝 떨어져 앞만 보고 간다면 틀림없는 부부다. 우리는 저기 철길처럼 만나서 하나가 되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저 미래로 걸어가고 있지만, 떨어져 혼자 걸을 때도 있었다. 같이 길 가면서 왜 우리는 때때로 다정한 친구처럼 깔깔 거리며 즐겁게 가지 못하나? 왜 철길처럼 떨어져 가나? 그러다가 또다시 만나고 또 떨어지고. 마치 자석이 기운을 잃어 붙을 수 없듯이. 왜 우리는 일정한 사랑의 에너지를 품고 있지 못할까? 배터리 가득한 기계는 절대 쉬지 않는다. 힘이 떨어질 수가 없다. 사람이란 다른 가 보다. 사랑의 에너지, 그건 일정치 않다. 그렇게 과하게 쏟아지다가도 어떤 때는 말라 버린다. 그리고 평행하게 걸어가다 갑자기 자석에 인력의 강한 힘이 끌어당긴다. 30년을 그렇게 반복하며 살았다. 어떤 때는 아프고 싫어 가까이 가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삶이란 오희려 조금 떨어져 사는 것이 더 좋다 생각했다. 가까이 가니 더 많이 상처 받는다 생각했다. 가까이 있는 척하는 게 최고라고도 생각했다.




가까이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가까이 가면 너무 많이 보인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조금 다가설 때는 잘 모른다. 선의와 호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걸음이 어느새 큰 발걸음이 되었다. 성큼 다가가니 그곳은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다. 희미하게 보이던 것이 뚜렷한 형체로 드러났다. 후회가 몰려든다. 되물리고 싶다. 세상에는 흐릿한 것이 좋다. 어렴풋한 모호함이 훨씬 좋다. 마음대로 상상하고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행복이다. 마귀의 놀라운 술책이 여기에 있다. 다가서 봐. 좀 더 다가서 봐. 호흡소리 들리고 살 냄새 맡을 그곳 가까이 다가가 봐. 새로운 환희가 열릴 거야. 다 거짓말이다.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 중앙 선악나무를 입 다물지 못하고 사모했다. 가까이 가서 열매를 먹어? 너를 위한 거야. 네 거야. 유혹이 몰려왔다. 가까이 가서 함께하고 나누고 먹으니 그것은 선이 아니다. 친절과 사랑과 호의도 아니다. 발랑 벗겨진 것이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야 마는 수치와 의심이었다. 가까이 가지 말자. 가까이서 짙게 쏫는 감정의 흘림을 하지 말자. 나와 가장 친하고 내 것이라 착각하는 순간 섭섭한 짙은 안개가 들이닥칠 테니. 그것이 가슴으로 흘러 들어와 거친 손결로 상처를 만들어 낼 테니.



가까이 가면 안되는가? 사랑의 에너지는 왜 한결 같이 나오지 않는가? 사람의 감정과 생각, 그것은 왜 마음을 요동치게 하여 평온의 상태를 빼앗아 가는가? 최근에 발간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Klala and the sun'에서 인공지능(AR) 아이 클라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Helen 아줌마를 쳐다봤어. 그리고 생각했어. Helen 아줌마와 Vance 아저씨는 한때 얼마나 사랑하고 서로에 흠뻑 빠져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Jorsie와 Nick처럼 서로 얼마나 친절하고 젠틀했을까? 그렇다면 Jorsie와 Nick도 그 언젠가 그들처럼 이렇게 불친절할 수 있단 말인가? Jorsie 아빠는 차에서 내게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했지. 얼마나 인간이 복잡한지를.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복잡한 정신과 감정을 불어넣으셨을까? 인도에 갔을 때 거리의 개들은 얼마나 편한 너그러운 얼굴을 가졌던가? 오히려 거리의 사람 보다도 훨씬 평온하다. 아마 동물에게는 감정의 기복은 별로 없을 거야. 생존과 번식의 본능이 아니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인간 만이 가지는 이상한 감정의 흐름들.


그래, 인간의 마음은 희한하고 복잡해서 이해할 수가 없어. 클라라처럼 인공지능 아이가 보는 인간은 이해할 수가 없을 거야. 그게 사람이지. 그래서 삶은 밋밋하지가 않지. 때로 광풍이 몰아치는 것 같고, 가까이 갈 수 없을 것 같은 공간도 생겨 나지. 그런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야. 바람이 문구멍으로 몰래 들어오듯이 사랑이라는 기운이 세차게 몰려오기도 하지. 그래서 우리는 같이 갈 수 있는 거야. 서로 떨어져 다른 방향으로 나뒹굴지 않고 다시 찾아 들어와 긴 철길 위를 다시 걸을 수 있어. 인생이란 이렇게 같이 걷는 거야.


짙은 구름이 그에게로 몰려들더니 다시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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