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청사포에 도착했다. 청사포는 해운대 달맞이길 끝에 있는 작은 포구다. 옛날 동해남부선 철길을 따라 걸으면 만난다. 지금은 블루라인 관광 철도로도 갈 수 있지만 철길 위를 두발로 걸어 아름다운 그곳을 찾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에게 청사포의 첫 경험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교회 주일학교 교사 학기말 회식을 여기 청사포에서 했다. 지금부터 40년이 넘은 그때의 청사포 바다는 야생의 풍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해운대에서 차도 겨우 들어가는 좁은 길을 따라 들어와 만난 이곳은 대자연 경이 그 자체였다. 바닷가 옆에 홀로 서있는 기와집에서 처음 맛본 피조개와 새우 맛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바다 모래가 푸르다고 해 청사포라 하지만 그는 해변 방파제를 때리는 검푸른 바다와 파도를 좋아한다. 지금도 아내와 시간 나면 여기 찾아와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곤 한다. 아무것도 막지 않은 푸른 빈 공간, 론 수면 밑은 보이지 않고 가려 있지만, 바다는 날마다 다른 빛의 푸른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저 대양으로 뻗어나가 수평선을 만들고 하늘을 만나는 태고의 자연을 만들어 낸다. 그에게 바다는 매일 다른 모습이며 언제나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는 신비의 큰 물덩이다.
그는 파도를 좋아한다. 언젠가 울릉도를 간 적이 있다. 3박 4일 일정으로 겨울 울릉도를 만끽하기 위해 떠났다. 아내는 북경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갔고, 그는 울릉도를 찾았다. 그런데 그는 8일이 지나서야 겨우 뭍으로 나올 수 있었다. 겨울 폭풍 때문에 배가 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울릉도 바다를 날마다 걸었다. 강풍으로 휘몰아치는 바다를 만끽하며 대자연의 소리에 감동하고 바다를 응시하곤 했다. 그에게 대자연이 만들어낸 바다라는 존재는 신비 그 자체이다. 그는 감동에 취해 글을 적었다. 청사포에 서있는 그에게 지금도 생생하게 그 감격이 전달되고 있다.
이렇게 큰 바다 파도 포효하는 소리 들은 적 없다. 대양신의 호통 소리에 저 큰 바다, 심하게 요동 치며 큰 파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 물결 조각들, 수평선 끝에서 쉼 없이 달려 나와 헐떡 거리는 숨 안고 여기 울릉도 북쪽 해안 천부에 도착했다. 그 파도들 여기서 만나 서로 악수하고 껴안고 반갑다고 소리치니 그 해우에 바닷가, 세상의 돌들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거침없는 숨결을 온몸으로 받으며 반길 뿐이다. 그리고 그 파도들 하얀 거품을 이곳에 쏟아 부우니 온 천지가 기쁨의 카타르시스로 떠들썩하다.
저 대양을 힘차게 달려온 거친 물덩이들. 이제 여기 이 울릉 해변에 도착하니 감개무량하다. 이제 얕은 해변 바닥에 사는 돌 만나야 하고 천년 동안 이 자리에 꼼짝없이 박혀 저 태평양 응시하던 검은 현무암 바위 덩어리들 만나야 한다. 이제 여기 도착해 그 꼳꼳한 머리 숙이고 흰 포말 왕관 머리에 둘러쓰고 있다. 그리고 천년 빙하 얼음 같은 에머럴드 푸른 보석 덩어리들 나타내 보인다. 여기 이곳을 빛나고 화려하게 물들인다. 이 보석들, 얕은 바닥 돌에 깨어지며 마주 보는 돌들 위에서 쏟아 내린다. 은빛 보석 알갱이로 변해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하얀 크리스털 솟아오르는 방사형 꽃 만들어 내더니 이내 바람 따라 날아다닌다. 내 온몸에 이 성수를 뿌려 놓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위대한 생명 에너지 만들어 내고 있나? 누가 이 위대한 대 자연 앞에서 감히 크다고 외칠 수 있나? 마음에 울분 있는 자, 저 표효하는 바다 울음소리 들어보라. 세상에서 찢긴 상처 받은 그대여, 여기 이 파도의 은빛 포말 바라보라. 바위에 자기를 깨뜨려 만들어 내는 저 아름다운 작은 보석들의 화려한 춤사위를 바라보라.
그리고 사랑에 목말라 거친 입술 다시며 텅 빈 가슴 달래고 있는 그대여? 바람에 날리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하얀 물방울 보석을 맞아 보라. 바위에 깨져 높이 솟아 오른 은빛 광채의 커다란 꽃을 바라보라. 그리고 바닥 긁어내며 쳐 올라오고 그 파도에 쓸려가는 저 몽돌 들의 큰 절규와 외침을 들어보라. 깊은 낮은 저음, 큰 베이스의 깊은 울림을.
그는 청사포 앞바다를 보며 생각한다.
난 왜 이리 자연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일까? 왜 그것을 넘치는 감격으로 대하는 걸까? 내 감성은 왜 다른 사람보다 이리 쉽게 자극되고, 살아 움직여, 내 마음 전체를 사로잡아 버리는 걸까? 자연의 신비, 음악과 예술의 아름다움, 난 때로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카타르시스, 마음의 정화를 얼마나 자주 느끼며 경험하고 있나? 책들 속에서 표현되는 인간의 감성과 이성, 그리고 오욕들, 그리고 그 속에 나타나는 또 다른 인생. 나는 그 속에 나타나는 표현 들에 얼마나 감탄하고 있나? 그리고 그것에 깊이 빠져 들고 있지 않은가?
그는 안다. 다른 사람 들 모두 이것 느끼며 사랑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들 단지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 어쩌면 그는 속이 너무 얕아 이것들, 그 감격들 꺼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그것 퍼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귀와 눈 그리고 마음과 정신, 너무 경박하고 깊이가 얕아, 이것들 자기 속에 있는 자물쇠 걷어내고 마음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도 너무 좋다.
내 유약하고 부드러운 마음과 정서,
이것 들이 나를 이렇게 풍성하게 만드니까. 그것 덕분에 꿈틀 거리는 내 의지를
그리고 내가 살아 있음 느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이렇게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