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60세가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달리기를 좋아한다. 용호동 메트로시티에 살 때는 이기대 공원 정상까지 시간 되면 달렸다. 엄청나게 힘든 언덕길을 오르며 포기하지 않았다. 5번의 오르막을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어가며 참고 달렸다. 집에서 출발해 분포고등학교를 지나 공원 초입에 도착하고 이기대 성당을 옆으로 끼고 오르는 첫 번째 오르막은 수없이 포기를 속삭이는 가혹한 길이다. 숨을 내뱉기도 힘든 지친 몸으로 그 관문을 넘어 서면 조용한 아침 산책로 같은 풍경이 들어선다. 차도 좌우엔 계절 따라 펼쳐 주는 자연의 즐거움이 언제나 있다. 늦은 가을엔 낙엽의 정취가 인생의 저녁을 생각나게 하고 봄이면 새 생명이 주는 녹색으로 눈이 밝아진다. 뜨거운 여름엔 굵은 땀방울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겨울의 찬 바람은 뇌 깊은 곳까지 서늘하고 상쾌하게 한다. 한 시간 조금 넘는 그의 달음박질을 그는 자랑으로 생각했다. 가족과 함께 여기 이기대 공원을 차로 드라이브할 때면 그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의 두발로 발자국을 만들어 냈던 길 구석구석과 거친 호흡을 느낀다. 땀방울이 만들어 내는 생기와 삶의 애착을 느끼곤 했다.
그는 추운 한 겨울 새벽에도 나가곤 했다. 바닥이 얇은 가벼운 러닝화를 신고 반바지와 소매가 거의 없는 조깅 상의를 입는다. 영하의 날씨에 흰 김을 뿜어내며 뛰는 그 모습을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곁눈질의 눈총을 받으며 길을 달렸다. 그가 좋아했던 길중에 하나는 메트로시티에서 남천비치를 바다 쪽으로 돌아 회 시장이 있는 광안리 끝에서 유턴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많이 뛸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길었고 평지지만 무척 힘들었다는 기억만 있다. 어느 겨울날 새벽이었다. 몹시 추운 영하의 날씨였다. 반바지와 반소매 러닝복을 입고 뛰다가 광안리 바닷가 데크 위에서 넘어져 버렸다. 그 추운 겨울에 이상한 복장으로 넘어진 사람을 아침 산책자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더 크게 발을 차며 그곳을 벗어났다. 아프고 힘든 아침이었지만 흐르는 땀의 맛은 언제나 좋다.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15년이 넘었을 거다. 어느 날 대학 친구가 연구실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자기는 저녁 먹으면 무조건 나간다고. 그리고 뛴다고, 힘들면 걷고. 그래서 암도 극복하고 있다고. 난 사실 그때 술을 엄청나게 먹고 다녔다. 온몸이 성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축 늘어져 있을 때도 많았다. 술이 깨지 안 깬 상태에서 강의까지 했던 때도 있었다. 그때 친구가 나타나 구원의 방법을 소개했던 것이다. 그가 그때 살던 아파트 옆엔 온천천이 있다. 지금처럼 아름답게 정비되지 않았지만 편도 2.5km 길이 시내 양쪽 편에 개설되어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0m, 100m도 뛰지 못했다. 숨이 차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수없는 시도 끝에 그는 달릴 수 있었다. 5km도 뛰고 10km 까지도 뛰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그렇게 쉬지 않고 뛸 수 있냐고.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그는 외국에 학회에 갈 때면 반드시 운동화를 챙겨간다. 호텔 주변을 지도로 익힌 뒤 동네를 뛴다. 싱가포르, 베트남, 발리, 오사카, 인도. 도시의 정취는 발자국과 함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새벽에 달린 새벽 서귀포 풍경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거기를 찾게 한다. 달리기는 그냥 그곳을 스쳐 지나는 것이 아니다. 땀방울과 함께 마음을 뿌리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공기가 떠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른 가을 아침을 그는 달려가고 있다. 굵은 땀방울이 떨어지면서 지친 마음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희망이라는 신기루가 그의 앞에 나타나 그를 설레게 했다.
난 내일도 이렇게 달릴 거야.
심장이 힘차게 소리 내는 생명을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