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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Sep 27. 2021

위대한 개츠비

내 팔을 더 멀리 뻗을 거야

몇 시간째 생각과 씨름 중이다. 무언가 쓰고 싶은데 나오질 않는다.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혼돈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언제가 찾았던 안개 자욱한 눈 내린 한라산 같다. 하늘과 땅도 구분되지 않는다. 길도 방향도 다. 회색빛 세상에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뿐. 진눈깨비 같이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얼굴에 떨어지고 있다. 그것들 작은 물방울 되어 맺히더니, 표면장력이 없는 푹 퍼진 습기가 되어 바닥을 흐르고 있을 뿐이다. 지금 10시 23분. 생각 붙들며 벌써 5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아침 즐겁게 읽던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 쪽을 덮었다. 문장들의 간결함에 놀랐다. 단어들로 만들어 내는 풍부한 의미와 표현. 너무 좋았다. 편하고 잔잔해 좋았다. 복잡한 사람들의 심리가 선명하게 활자로 뛰쳐나왔다. 영어라는 언어의 탁월함. 그것을 보았다. 히브리 사람들이 만든 위대한 발명품. 그리스 문자에서 로마문자로 발전된 26자 알파벳. 우리의 생각과 느낌과 비밀, 다 들춰낼 수 있다. 그것이 언어다. 언어는 활자로 세상을 날아다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침투한다. 그리고 오래 머물며 짙은 자국을 낸다. 우리 정신은 그것에 깊이 빠져 그 속을 유영하며 즐거움과 감동을 뱉어낼 수밖에 없다. 세포와 혈관들 까지도 그것에 반응하며 흥분하는 것이다. 그렇다. 언어들의 향연. 그것은 파우스트의 발푸르기스 밤의 축제보다 더 화려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의 연회, 한 여름 츠비의 연회보다 취기가 있다. 언어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가장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인간이 동물과 다른 근원적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는가? 왜 저자는 츠비가 위대하다고 했을까? 저자는 희망을 말하고 있나? 꿈을 가진 인간, 이상을 향해 달려갈 줄 아는 사람, 물질과 세속의 강한 힘 속에서도 사랑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 개츠비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래서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난 동의할 수 없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과 헌신, 그것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나? 세속에 물든, 그래서 여기저기를 방황하며 결국 사치와 화려, 관심과 이목을 선택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위대한가? 자기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개츠비를 버리는 그런 여자이지 않은가? 자기 남편이 정부와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향락을 쫓아 그 사람을 따라간 여자를 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사랑과 명을 사정없이 파괴하고  돈 속에 숨어 버리는 인간. 관용과 자비에 무관심하고 돈으로 만든 그들의 연대에 숨어 버리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행한 이 더러운 똥을 다른 사람이 치우게 만드는 비열한 여자. 왜 개츠비는 그런 여인을 사랑하고 있나?




희망, 꿈, 이상, 나에게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가? 난 어디에 꿈을 두고 살아가야 하나? 꿈을 어디에서 찾아내야 하나? 나이 들어간다고 꿈도 소멸하여 버렸나? 세상의 편함과 향유에 주저앉아 버렸나? 톰과 데이지가 되어 버렸나? 꿈 그런 건 허상이야. 이상, 꿈 그것이 뭐야? 돈, 화려, 자랑. 그것이 최고지.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이 만든 허상에 속지 마? 꿈은 영원이 얻을 수 없는 가짜 희망이지.


거기에 꿈이 있었다. 이상이 있었다. 초록빛이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희망이 있었다. 개츠비는 그 불빛을 믿었다. 그래서 푸른 잔디를 너 먼길을 걸었다. 이제 손 만 뻗으면 그것이 잡힐 수 있다. 환상적인 즐거움이 바로 저기에 있다. 그런데 거기를 갈 수 없었다. 올해 그리고 내년, 시간은 미래에서 내려와 지금을 거쳐 과거로 들어가는 것이다. 희망은 저기 미래에 머물러 있는데, 그 미래는 이미 여기에 머무르다 과거로 도망쳐 버렸다. 희망봉과의 간극. 그러나 개츠비는 실망하지 않았다.


내일 난 저기를 향해 더 빨리 뛸 거야. 그리고 내 팔을 더 멀리 뻗을 거야. 그럼 어느 멋진 아침이 찾아올 거야.


그것이 위대한 것인가? 희망봉은 저기 멀리 있고, 시간은 끝없이 현재로 달려와 과거로 가는데, 그래도 내일엔 더 빨리 뛸 거야라고 포기하지 않는 그것. 그것이 위대함 인가?  피츠제럴드는 이 책 지막에서 의미 심장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그러므로 우리는 조류를 거스리는 배처럼, 과거로 끊임없이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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