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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너졌다

by 동이화니

제자 P부장을 불렀다. 하필이면 그도 요즈음 몹시 바쁘다. 제주도 하수관거 설계가 문제가 되어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한다. 내가 전화를 했다. 대전에 있다고 했다. 제주에 가서 일 보고 바로 대전으로 가 협의하고 저녁 7시경에 부산에 도착한다고 했다. 학교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오면 함께 실험을 해서 기계 용량을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차피 첫 번째 콘크리트 시험체는 예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보다 경험 많은 P부장이 나았다. 흥분 상태의 나를 보고 그는 말했다. "아무래도 다음 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애써서 만든 시험체 갑작스럽게 이 밤에 서둘러해서 버릴 수 없잖습니까?" 나이 60살 먹은 교수보다 그가 훨씬 나았다. 그날 우리는 저녁 먹으며 실험이 주는 안타까움과 어려움을 늦도록 나누었다.


며칠 후 실험을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35톤에 기계는 멈추어 버렸다. 20톤에서 시작해 35톤 까지, 우리가 사용한 15톤은 시험체에 초기 미세 균열만 낼 뿐이었다. 절망을 두 눈으로 확인해 버렸다. 다른 방도가 없다. 실험 포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Y대에서도 실험하기 힘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기들 스케줄이 다 차 있다고 했다. 낭떠러지로 나는 완전히 떨어져 대자로 뻗어 버렀다.



옛 사장에게 전화를 돌려댔다. 궁지에 몰리니 나도 모르게 전화도 되지 않던 번호를 돌리고 있었다. 한 달 전 아무리 해도 받지 않던 전화다.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 교수님. 너무 반갑습니다." 사로 안부를 전하고 나는 지금 상황을 이야기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우리 회사 초창기에, 어려웠던 시절에 교수님 얼마나 많이 우리 도와주셨는데요. 0점 조정하는 거 우리 J부장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 안되면 다른 기계를 투입해서라도 실험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담당자 만나 상의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구원자를 만났다. 역시 그는 오랜 신의를 저 버리지 않았다. 그날 밤 이제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희망이 다시 떠 올랐다. 잠도 오지 않았다.


다음날 전화는 오지 않았다. 2시경에 담당 부장을 만날 거라 했는데,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는 내게 소식이 없었다. 예의가 아닌 거 같아 그날 연락하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까지 숨 조우며 기다리다 전화를 했다. 받는 음성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담당자 말 들으니 안된다 하네요. 교수님이 그동안 기계 서비스도 받으셨어야죠. 20년 된 기계 아닙니까? 제어기를 바꿀 수밖에 없네요." 어제의 약속의 말은 하루가 지나서 사라져 버리고 돈만 바라는 사업가로 돌아가 있었다. 무너져 내린 내 가슴을 설명할 길이 없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믿은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스스로 비난했다. 내가 영향력 있는 교수라면 저 사람들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무시와 내 동댕이에 난 불쌍하게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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