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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이화니 Oct 09. 2023

푸르스트를 읽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를 마쳤습니다. 1909년부터 1922년까지 14년간 쓰인 4,000페이지가 넘는 길고 어려운 소설입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쓰인  <끝>을 마주하니 새로운 감회가 몰려듭니다. 영어 번역본에는 'I ends here'라고 적혀 있습니다. 푸르스트는 이 책의 초고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어젯밤 제 글의 마지막에 끝이라는 단어를 적었습니다.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위대한 소설가의 단 하나의 유일한 책,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는 설렘 때문에, 나는 책을 덮을 수가 없습니다. 어제저녁부터 지금까지 (다음날 오후) 펼쳐져 있습니다. 진한 감동으로 나를 즐겁게 했던 10년간의 동행을 쉽게 닫을 수 없습니다. 책갈피 속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를 느끼고 싶어 문을 열어 두었습니다. 동백의 향기가 깊이 베인 증기가 몸에 스며드는 듯합니다. 나비처럼 날갯짓하며 나를 취하게 합니다. 푸르스트와 함께 한 기억들이 주말 오후 시간에 조용히 담기고 있습니다.


책 읽기를 두려워하던 내가 푸르스트를 만나서 많이도 변했습니다. 책은 정신을 즐겁게 해 주는 묘약임을 그에게 배웠습니다. 독서는 즐거운 여행길이라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푸르스트를 만났기 때문에, 읽기 장애물 들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많은 페이지와 어려운 내용도 이겨내며 나아갈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꼽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 되어 주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첫 페이지를 열고 그를 더 진하게 만나고 싶습니다. 그는 <끝>이라고 썼지만, 내게는 <시작>이라는 단어입니다.



푸르스트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겨울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잡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강신주를 유독 좋아하던 터라 그분의 추천 도서 목록 때문 인지 모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국일 출판사 간행본이 이미 있었지만, 새로 출판된 민음사를 잡았습니다. 전공자인 김희영교수 번역이 원문에 충실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으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정말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만연체 문장의 글은 길고 끝이 없었습니다. 문장의 마침표가 20 페이지를 지나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도무지 앞 페이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문장들과 시름하며 지성과 이해의 한계를 느끼며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에 취하기도 하고 정신이 새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미세한 감정을 핀셋으로 뽑아내어 우리 눈에 보일 때면 전율과 같은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의 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음악과도 같은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책 내용을 언어로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의 글은 진부함을 벗어 버린 독창적 예술이라는 생각이 깊이 찾아들었습니다. 인간과 예술, 사상과 철학,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유의 바닷속에서 나도 유영하며 그의 향기를 느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깊은 뜻은 모르지만 그렇게 함께 지냈습니다.

민음사의 이 책은 붉은색, 노란색 표지에 여러 개의 꽃 입사귀가 그려져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읽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마치 통속 연애 소설을 읽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책들을 얼마나 들고 다녔는지, 책 모서리 부분은 표지 껍질이 벗겨져 하얗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낱장은 누렇게 변색되었습니다. 그래도 책 카바는 잘 보관해 두어 그것을 입히면 깨끗합니다.

김희영 교수가 책 번역을 마무리해 주실지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첫 출간 때는 외국어대 현직 교수였지만 그 사이 정년 퇴임을 하셨습니다. 2년에 한 두 권씩 발간했으니, 마지막 '되찾은 시간 ' 13권 까지는 거의 1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음 권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발간된 책을 두 번씩 천천히 읽으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니까 나도 이 책을 2013년도에 읽기 시작해 2023년도 3월에 마친 것입니다. 십 년간 내 책상 위에서, 그리고 가방 속에서 나와 함께 동행했습니다. 십년지기입니다. 모든 시간을 함께 하면서 말입니다. 푸르스트는 마지막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내 두뇌가 진귀한 광맥이 지극히 다양하고 광대한 지대에 걸쳐 매몰되 있는 풍요로운 광산임을 알고 있었다.

(되찾은 시간 2(13권),313쪽)

그렇습니다. 그의 진귀한 광맥을 나는 10년간 캐며 살았습니다. 그의 보석들을 쳐다보며 황홀했고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마음에 찾아 들어와 나를 풍요롭게 했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김희영 교수께, 그리고 민음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푸르스트 말처럼 내게도 진귀한 광맥이 있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감정과 느낌, 생각들. 내 마음 밭에도 귀한 보석들이 깊이깊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환갑이 재작년에 지나 버렸습니다. 과연 그 광맥을 캘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있을 까요? 푸르스트가 말했듯이, 그것을 채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이지 않습니까? 내가 죽는다면 그 광석을 채굴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광부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귀한 광맥도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망치와 연장을 들고 단단히 차비해 광산 속으로 광맥을 찾아들어갑시다. 고통으로 힘들지 모르지만 새로운 것을 건져 냅시다. 나만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말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 속에서'라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오랜 시간'으로 시작한 그는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시간 속에서'라는 깨달음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을 묘사하는 일, 인간에 대한 글쓰기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합니다. 설령 그 일로 자기가 괴물이 된다 해도 말입니다. 자기 글에서 인간은 한정된 공간만 차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과거와 현재, 무한의 시간을 살아낸 거인의 모습으로 시간 속에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지금 표현한 이 내용이 정확한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내용이 어려워 정확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책의 마무리를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시간 안의 공간만 채우는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다. 오히려 영원한 시간의 주인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그에게 집중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다. 펜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몸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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