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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pr 18. 2023

팔은 안으로 굽는다

내 안은 누구?

맛에 둔감한 편이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식당에 부러 찾아가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맛에 예민하지 않기 때문인 듯. 그 맛이 그 맛. 특별함을 잘 모르겠다. 먹던 게 당기고, 익숙한 게 좋은 사람이다.

반대로 남편은 편의점에서 새로운 음료수나 과자가 보이면 맛이 궁금하다고 덥석 집고, 애써 맛집을 찾아가 줄 서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입으로 맛을 보고는 불향이 난다고 말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신기한 사람이다.(향은 코로 맡는 거 아니었나? 헤헤)


비단 남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시부모님과 시동생, 하물며 동서까지 미식가 비슷한 느낌을 낸다. 다들 향과 식감에 민감하고 음식 품평에도 진심이다. 명절에 모여 식사를 할 때면 내겐 대체로 맛있는 음식이 그들 입에는 안 맞을 때가 종종 있다. 아주 만족하며 고기를 흡입하고 있는데 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거나, 뜨거운 탕을 후루룩 냠냠 잘 먹고 있는데 국물 맛이 깊지 않다고 한마음 한뜻으로 이야기하면 조금 난처하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하고 그럭저럭 분위기를 맞추면서도 속으론 갸우뚱, 조금 덜 맛있게 먹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재작년 지방 소도시로 이사 온 후 시댁 식구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여행을 겸해 온 적이 있다. 빵을 좋아하는 시동생네 부부는 미리 유명한 빵집을 검색해 왔고 머무는 동안 잊지 않고 빵가게를 방문했다. 시부모님과 아이들 까지 8명이 먹을 넉넉한 바게트를 구입해 맛보기 시작했다.  동생네 부부가 먼저 반응을 보이며 남편에게 말한다. "형 이거 먹어봐! 와~향 죽여줘" "아주버님 드셔보세요. 향 진짜 많이 나요" 시어머님도 말씀하신다. "얘~진짜 향 진하다" 중학생 조카도 거든다. "큰아빠 이거 찐이에요 찐! 냄새 진짜.." 당연히 남편도 한 입 깨물더니 삼키기도 전에 풍미와 향이 좋다고 호들갑이다.

뭐야? 무슨 향인데? 나만 모르는 거야? 몇 번을 씹고 꿀떡꿀떡 넘겨도 모르겠다. 그냥 맞장구치며 대충 묻어가려다 이실직고했다. 도대체 무슨 냄새가 나냐고. 새우향이 난단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그렇구나.. 그랬구나.. 나만 몰랐구나.. 히히)






얼마 전 저녁을 먹다 새우향 바케트 일화가 갑자기 떠올라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비슷했던 상황의 다른 에피소드까지 곁들이며 툭 농담을 던졌다. "다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향 조금 나는 것 같고 완전 오버야 오버. 맨날 고기 냄새난다, 다 먹고 나선 별로다 그러고" 남편도 농담인 걸 아니 심각하지 않게 받는다. 식구들이 우리 사는 지역에 왔으니 우리 생각해서 지역 음식 맛있다고 하는 거 아니겠냐며 편을 든다. 나도 가볍게 응수했다. "그렇지~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겠니? 식구들이라고 편드는구먼?" 하고 웃고 만다.


그때 훅 들어온 남편의 말.


"무슨 소리야. 내 팔 안은 너지"


오잉? 갑자기 심쿵하는 이 느낌 뭐지? 모른척했지만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생각해 보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이제는 부모님이 계시는 집보다 남편과 딸,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이 편했다. 명절을 쇠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래도 내 집이 제일 편안하네' 하며 발을 뻗고 눕는다.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어려운 일이 있을땐 그래도 서로를 찾고 남에겐 하지 못할 말도 쏟아낸다. 만에 하나 수술을 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 생긴다면 환자 보호자가 되어줄 사람도 역시 배우자겠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산 시간보다 우리 부부가 함께 살아갈 세월이 길 테니 더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어야 하는 게.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을 떠나 서로의 팔 안으로 들어왔나 보다. 딸아이도 크면 자기 팔 안쪽을 찾아가겠지.


남편은 7급으로 이른 퇴직을 한 나에게 '왜 그만뒀느냐, 계속 하지 그랬냐' 하는 후회나 원망 섞인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회사 지인들에게 돌아오지 못할 요단강을 건넜다며 쯧쯧쯧 핀잔도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집에 있으니 더 편안하다고 말해주는 남편이다.(아직까지는)

역시 내 팔 안쪽엔 남편 밖에 없는 것인가.. 그러니 미우나 고우나 가재랑 게가 돼서 서로 편들며 살아야겠구나, 안으로 굽는 팔로 안아주며 살아야겠구나 잠시 생각해 봤다.



덧. 이 글을 쓸 때쯤 우연찮게 발견한 동시를 옮겨본다.




              태초에    
                                  - 조기호

팔이

안으로만 굽어지는지 아니?

안아 주라는 것이지
보듬어 주라는 것이지.

꾸지람을 듣고
문 밖에 홀로 서 있는
서럽고
외로운 마음들

괜찮아
괜찮아
품어 주라는 것이지.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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