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버스를 탄다. 밤 9시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이런저런 말소리, 생활소음이 들린다.
조지고, 조지고, 조지고.
엥? 뭘 조져?
귀를 한껏 쫑긋해 보니 하얀 피부가 눈에 띄는 아가씨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학식 4천 원 얘기도 하는 걸 보니 대학생인 듯. 누가 봐도 모범생처럼 보이는 그의 입에선 계속 조지다가 흘러나온다.
“일단 나베부터 조지고, 볶음우동 조지고 그러면 끝이야"
그냥 먹으면 안 되겠니? 꼭 조져야겠니?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어쩐지 그 단어가 귓가에 남아 계속 맴돌았다. 뭔가 리듬감도 있는 것이 발음할 때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욕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여느 부모가 그렇듯 아이가 욕 비슷한 말만 해도 화들짝 놀라며 싫어했다. 3학년이던 아이 입에서 무심코 ‘아이씨~’라는 말이 흘러나왔을 땐 ‘아이참~‘으로 바꿔 말하라 심각하게 조언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어른인 나도 잘 안 쓰는 아이참 이라니...
언젠가 명절날 사촌오빠와 게임을 하던 아이가 '뚝배기 뚜껑 열리네~'라는 말을 해맑게, 그것도 시댁 식구들 앞에서 내뱉었다. 자식교육 잘 시키던 척을 하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왜 안 쓰던 말을 하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말이 어느 프로그램 유행어였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았다.
십수 년 전 9급 공무원이던 어느 날, 조용한 사무실에 격양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라구요? 시-발 녀자?"(순화해서 썼음)
민원인과 통화를 하던 동갑내기 직원이 상대방에게 들은 욕을 다시 읊으며 지르던 소리였다. 키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무례한 사람에게 쫄지 않고 되받아치던 멋진 여성.
그때 난 교묘하게 욕을 섞는 민원인에게 불쾌한 마음을 드러내려다가도 당신 이름 뭐야?라고 물으면 목소리가 작아지던 9급 시보였다.(정식임용 전 6개월간의 수습기간 시절) 전화기를 평소보다 크게 쾅! 내려놓는 게 감정표현의 전부였다.
출산을 두 달 앞두고는 승진과 함께 부서이동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그때 예고도 없이 사무실로 찾아온 민원인은 원하는 바가 뜻대로 되지 않자 소리부터 질렀다. 아무리 법과 규정을 설명해도, 당신의 화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말해도 만삭인 나에게 비아냥 거리며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냈다. 정확한 단어는 잊었지만 수치스러웠던 풍경, 입에서 흘러나오던 더러운 느낌은 기억난다. 합리적인 민원인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안하무인인 인간들도 버젓이 존재했다. 공무원 6년 차라 어느 정도 대응하는 노하우가 생겼음에도 배속 아이 때문이었는지, 호르몬 까닭이었는지 결국 참지 못했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 진상을 탓하며, 그때까지도 한 발짝 물러서서 모른 체하던 팀장을 원망하며. 분한 마음에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그때도 속으로 겨우 내뱉은 말은 ‘아~ 짜증 나. 개나리’가 다였다.
황영미 작가의 에세이 <사춘기라는 우주>에 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로도 유명한 청소년 문학가인 그는 에세이에서 자신을 '욕을 제법 하는 어른'이라고 당당히 밝힌다. 특히 운전 매너가 없는 사람을 보거나, 뉴스에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정상인 것처럼 굴러갈 때 어김없이 욕이 튀어나온다고. 혼잣말로 하는 욕도 못하면 그 열받음을 안고 어찌 살아가느냐고. 이때 중요한 건 적정선이며, 누군가에게 직접 하는 욕, 성적인 것과 관련된 욕은 절대 하지 않는단다. 욕에도 품위가 있다 말하는 황영미 작가님이다.
그래도 청소년 소설을 쓰는 분인데 욕에 대해 이렇게나 솔직히 밝힌다고?
지금껏 불합리하고 열이 받는 상황에서도 욕을 참아가며 혼잣말로도 내뱉지 못했던 내 마음이 사이다처럼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래 욕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 슬쩍 설득당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잠재된 욕 본능이 꿈틀거렸다.
이런 마음은 꼭 욕이 하고 싶어서만은 아닐터다. 돌이켜 보면 인간관계에서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내가 자주 했던 말은 '괜찮아''아무거나''난 신경 쓰지 마'였다. 배려라는 허울 좋은 말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게을렀고 그렇게 취향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좋아하는 음식도, 좋아하는 색깔도, 좋아하는 음악도, 좋아하는 책도, 좋아하는 일도 어딘지 어정쩡하고 애매한 사람.
어정쩡한 나는 억울함이 차오르는 일 앞에서도 감정을 숨길 때가 많았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아닌 척, 괜찮은 척 꾸미다가 뜬금없이 스스로를 자책했고, 그 화살은 제일 만만한 가족 그중 남편에게 돌아갔으리라. (남편에게만은 쌈닭이다. 못됐다.)
이제 욕 좀 하고 살련다. 감정표현에 게을러지지 않겠다.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원하는 건 이거고, 그런 행동은 기분이 나쁘다고.
황영미 작가님처럼 멋지게 나만의 욕 철칙도 세워보겠다.
첫째, 아껴서 하자. 둘째, 혼자 있을 때만 하자.
셋째, 내 감정을 더 이상 표현할 정확한 말이 없을 때 시원하게 내지르고 털자.
십수 년 전 임신부인 내게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욕을 퍼붓던 진상을 생각하며 조용히 뱉어본다.
'시-발. 꺼져'
이 말과 함께 내 기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그런데 큰일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욕할 거리가 한가득이다. 아껴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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