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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Mar 20. 2023

책 좋아한다 톡 까놓고 말하기

글쓰담 독서모임

책을 좋아한다. 책 읽는 시간도, 책 읽는 공간도, 책 읽는 내 모습도.


직장을 다닐 땐 출근 전 10분이라도 책을 읽었다. 점심시간엔 얼른 밥만 먹고 돌아와 책을 펼쳤고, 살짝 우울감이 몰려올 땐 점심을 포기하고 직장 내 북카페에 올라가 한참 책 구경을 했다. 재작년 십수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땐 남편과 동료들에게 일을 관두면 하루종일 책만 보고 싶다고도 말했다.(막상 그만두니 하루종일 책만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더이다. 헤헤)


허나 책을 좋아한다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책을 가까이하지만 데미안 같은 고전을 읽은 적도, 코스모스를 닮은 벽돌책을 깨본적도, 누구나 아는 토지, 삼국지도 읽은 적이 없다. 신생아 육아도, 아이랑 놀아주는 방법도 다 책으로 배우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아이 1학년 때부터이니 나는 현재 6년 차 독서 초심자다. 책이 좋아 매일 야금야금 읽는다.






왜 좋아하면서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는 걸까?

("바보야? 왜 말을 못 해?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 하냐고?" 갑자기 <파리의 연인> 박신양 배우가 떠올랐다. 히히)


첫째, 책을 향한 내 사랑을 고백할 사람이 없다.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는. 같이 살고 있는 남편조차도 본인은 평생 읽을 책을 초등학교와 군대에서 다 읽었다며 애써 거리 두기를 하는 중이다. 한때 스릴러 소설을 연달아 읽던 내가 이야기 속에서 목도 잘려 나가고, 척척 죽기도 잘 죽는 피부림 설정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신나게 떠드니 “너 그런 거 너무 많이 봐도 안 좋아 “ 심각하게 말하며 김을 빼놓던 남자다.


둘째, 앞서 말했듯 난 독서 초심자다. 재미를 1순위에 두고 그때그때 필요한 책, 끌리는 책을 읽는다. 자기 계발서, 교육서, 돈 버는 책, 소설, 에세이, 그림책 가리지는 않지만 독서고수들이 읽을법한 책은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아직 손이 잘 안 간다.

그러니 책 좀 읽어요 라고 밝히면 오~대단한데? 하는 반응이 돌아올 것 같아 쑥스럽다. 쓸데없이 진지한 사람,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염려도 된다. 수준 높은 교양서를 읽나 오해하는 것도 꽤나 부담스럽다.


아이 학교에서 그림책 모임을 하며 알게 된 엄마가 모임에 일찍 온 날, 우리 둘만 앉아있는 게 어색했는지 안 하던 질문을 한다.


"집에 있으면 뭐해요? 맨날 책만 읽는 거 아니야? 호호호"

"어? 맞는데. 집순이라 집에서 책 보는데. 그게 좋은데.."


말하지 못했다. 호호호 웃음소리와 책만? 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공기는 더 어색해졌다.




다들 나처럼 쉬쉬하며 숨어서 읽는지 책에 호감을 가진 사람을 알아챌 수가 없다. 서로 알아볼 수 있는 작은 배지를 어딘가에 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는.


"혹-시- 책 좋아하는 사람?"

"맞아요. 당신도?"

(당근마켓 거래 하는 사람 알아보는 느낌 같다. 하하)






비슷한 시기 브런치 작가가 되어 일단 써보자 작정한 작가님들과 2월부터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그동안 책 이야기 나눌 사람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기웃했으나 쓸데없이 낯가리는 성격에 매번 머뭇거리던 나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용기 내 참여한 독서모임 ‘글쓰담’은 순한 맛을 표방하고 있어 괜스레 근사한 말, 있어 보이는 말을 해야 하나?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다.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있기에 서로의 생각을 나눌 때도 끄덕끄덕 하는 이야기가 많다. 열명이면 열 명의 생각과 지혜가 담기니 혼자일 때보다 풍성한 책 읽기가 가능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드디어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 읽는 여자다' 커밍아웃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책수다를 하니 모임날인 수요일엔 마음이 달다.




가끔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독서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닌가. 읽으면 꼭 실천해야 한다는, 성장해야 한다는, 기억해야 한다는.

허나 이동진 작가님은 말씀하셨지.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읽으라고.

글쓰담과 함께 재미있게 읽고 쓰며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행복한 사람은 습관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 우리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게 최상의 행복 기술인데 그 습관 중에 독서가 있다면 너무 괜찮은 거죠(...) 습관화되어 매일 책 읽는 사람이 있다고 쳐보세요. 저녁 먹기 전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있으면 책을 자동적으로 펼치는 거예요. 그건 행복인 거예요.♡

이동진의 <이동진 독서법> 중에서



다들 어디쯤에 살고 계신가요?

저랑 다정하게 책 이야기를 나눠 주어서 고마워요.

쓰담 쓰담 '글쓰담' ^^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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