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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May 29. 2023

불안하신가요?

저도 그렇습니다

봄.. 꽃처럼 떨어지는 문해력..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더 늦기 전에...  
[ OO독서논술 ]


벚꽃이 희끗대던 지난 봄날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눈에 띈 현수막이다. 봄꽃이 그려진 핑크색 바탕과 어울리지 않게 시뻘건 붓글씨체로 쓰인 문장. 어쩐지 빨간색감이 우리 아이 그냥 두면 문해력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괜스레 딴지가 걸고 싶다. 소원을 이루려 흩날리는 꽃잎을 애써 잡으려고도 하는 낭만적인 봄꽃을 꼭 떨어지는 문해력에 비유해야 했을까? '더 늦기 전에'라는 문구는 이미 늦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게 아닐까? 문구는 신박하지만 굳이 시뻘건 색으로 불안감을 조성해야 했나?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대치동 학원 관계자가 말하길 엄마들의 불안감만 자극하면 집문서도 들고 온단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뼈가 없지는 않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남은 육아휴직을 다 썼더랬다. 기꺼이 행복한 마음으로 아침 등굣길을 아이와 함께 하고, 하교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 서있는 일이 일상이 될 즈음 또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학원 가방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간 일하는 엄마로 집-회사만 오가고 아이도 직장 어린이집을 다닌 터라 동네 정보를 얻을 만한 이가 하나도 없었기에 학원버스와 가방을 매의 눈으로 좇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게 된 아이 짝꿍이 메고 있던 노란색 영어학원 가방. 이OO 토킹클럽. 옳거니. 집이랑도 가깝다. 바로 달려가 상담신청을 했다.


“어머니~ 6개월이 지나면 이렇게 술술 영어책 읽는 모습을 보실 거예요. 아주 신기하실 거예요.”


조그만 교실 한편으로 나를 안내한 원장선생님이 영상 하나를 보여주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딸아이 또래만 한 영상 속 아이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영어책을 줄줄 읽고 있었다. 이렇게 한 달에 한 번 학부모님께 낭독영상을 보내드리면 아주 좋아하신단다. 수업은 두 시간, 그중 한 시간은 숙제를 하고 검사를 받는 시간이라 했다. 숙제까지 다 체크해서 보내니 집에서는 전혀 봐줄 게 없다며, 마치 그것이 제일 큰 장점인 양 줄줄이 늘어놓는 선생님의 목소리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신경 쓸 것이 없다는 말은 정말 달콤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초등입학 전까지 예체능 말고는 그 흔한 학습지도 따로 시켜본 적이 없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며, 집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며, 주말마다 산과 들로 놀러 다니며 자연스럽게 익히게 했던 나는 막 1학년이 된 아이들이 두 시간씩 주 5일 영어수업을 한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이틀만 가는 수업은 없는지 망설이며 되묻는 내게 영어는 주 5일 꾸준히 해야 하는 거라 조근조근 알려준다. 우리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반은 지금 딱! 한자리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여가면서. 하필! 마침! 딱! 하나!


학교생활에 좀 더 적응하면 보내볼까 하는 심상으로 9월에 시작하는 반은 없는지 물으니, '이런 순진한 엄마 좀 보소' 하는 표정으로 대답이 돌아온다.


“있는데요. 어머니~ 그때는 7살 아이들하고 수업해야 해요. 괜찮으시겠어요?”


존댓말을 쓰며 예의를 갖추었으나 뉘앙스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제기랄.. 한 자리가 남았다더니. 이제는 7살과 수업해야 한다며 나의 불안함을 자극한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 학원 문을 나서는 내게 '다음에 오면 들어갈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끝까지 잊지 않더라. 고수다.




딱 한자리 남았다는 영어수업은 등록하지 않았다. 어쩌면 7살과 수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내게는 협박 같은 말을 듣고도 돌아서서 나온 이유가 무슨 거창한 교육철학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1학년이 학교 끝나면 놀아야지! 어떻게 일주일에 5일씩, 그것도 두 시간씩이나 학원을 다녀?’라는 단순한 생각 딱 한 가지뿐이었다.


아이는 날마다 학교 앞 놀이터에서 실컷 놀았고, 2학기가 되면서는 이제 놀이터가 조금 지겨워졌다며 하교 후 미술학원으로 직행했다. 나도 한 학기 동안 육아서와 교육서를 읽으며 나름의 교육소신을 만들어갔다.


1년 먼저 휴직한 직원이 했던, 입학하는 날부터 바로 다닐 수 있도록 학원을 세팅해 놓아야 한다는 말, 영어는 무조건 파닉스 반부터 넣어야 한다는 말이 진리가 아니었음을, 영어학원 원장선생님이 6개월이면 영어책을 술술 읽는 신기한 경험을 할 거라며 보여준 영상은 단지 영어 글자를 읽는 것이지, 영어책을 읽는 것이 아니었음을 머지않아 깨달았다.


아이는 이제 6학년이다. 여전히 영어학원은 다니지 않는다. 학원은 다니지 않지만 공부루틴은 있다. 내가 봐도 재미있는 영어 그림책을 양껏 봤고, 영어 듣기, 읽기, 독해 문제집 풀기 등 시키지 않아도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히 하고 있다. 스스로 영어를 좀 잘한다고도 느끼는 눈치다.(수학에 비해. 헤헤)




그래서 불안하지 않냐고요? 아니요. 불안합니다.


이제 중학생이 된다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여름방학땐 빡센 영어 문법 학원을 보낼까, 단어를 백개씩 달달달 외우게 할까 고민한다. 다른 아이들은 '뭐 배우나' 신경도 곤두세우고, 아이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도 한다. 허나 불안함에 휩쓸려 아이를 몰아세우지 말자, 사교육으로만 모든 것을 채우려 하지 말자, 우리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소소한 소신을 지키려 애쓴다.(애쓴다 쓰고 참는다라고 읽는 마법. 하하)


6년 전 그날 불안함을 자극하던 원장선생님에게 아무것도 모른 채 휩쓸리지 않은 나를 다행이라 생각한다. 맹목적으로 학원을 좇지 않고 필요할 때 적절히 이용하자는 마음이 생긴 것에 스스로 운이 좋았다 여긴다.


그래도 이따금 불안하다.   

그래서 누군지 모를 누군가에게 바란다.

제발 갈대 같은 학부모의 마음을 흔들지 말아 다오.

안 그래도 얇아진 엄마 마음에 불안함을 지피지 말아 다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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