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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May 31. 2023

당신의 남편은 담배를 피우십니까?

우리 집에는 한 명의 흡연자와 두 명의 비흡연자가 살고 있다. 그 한 명이 엄마인 나라면 이 글이 조금 더 참신했을지 모르겠으나 진부하게도 흡연자는 나의 남편이다. 20대 초반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이미 흡연자였고, 담뱃값이 껑충 뛰었던 시기 짧게 금연을 한 적은 있었으나 여전히 담배 피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굳이 변한 게 있다면 지금은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는 정도.


사실 연애할 땐 담배 피우는 것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가 술을 좋아하듯 담배도 기호식품이라 생각했고, 가끔은 그 모습이 멋있기도 했으니.(대학생 시절 콩깍지 단단했구나. 미쳤..) 남편의 흡연으로 인한 불편함, 다툼, 비난, 저주(?)는 모두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생겨났다.




아이를 낳고 베란다 확장이 안 된 아파트에서 2년을 살았다. 주말부부라 금요일에 집에 오던 남편은 집에 있는 이틀 동안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더랬다. 그때는 사무실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상사가 있었고, 술집, 카페 내에서도 꽁초를 쌓아가며 담배를 피워대던 시절이니 지금보다는 흡연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그래도 신생아가 있는 집 베란다에서 담배라니. 다시 생각해도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일이다.


어느 날 1층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할머니를 만났다. 돌도 안된 아기를 키우는 여느 엄마가 그렇듯 며칠째 머리도 안 감고 좀비 행색을 한 터라 부러 시선을 피하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내가 누르는 층수를 확인한 할머니가 정겨운 목소리로 정겹지 않은 이야기를 하신다.


“6층 엄마구나!? 아이고~ 그 집 아저씨 담배 냄새 다 올라와. 전에 담배 피우고 베란다 밖으로 꽁초 버리는 거 보고 내가 엄청 소리 질렀잖아~ 애기아빠가 말 안 해?"


앗! 어디 쥐구멍 없나.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6층까지 올라오는 내내 한 술 더 떠 할머니와 남편 욕을 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편은 고분고분했다. 나의 지랄맞음에 포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날 이후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는 꼴을 보는 것은 면했다.



2년 후 옮긴 집은 한 층에 네 집이 있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베란다 확장이 되어 있기에 혹시 모를 베란다 흡연을 예방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8층이지만 기꺼이 1층으로 내려가 건물 밖 흡연구역에서 핀다 했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어느 날 밤 11시. 쾅쾅쾅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에 온 가족이 놀랐다. 찾아온 사람은 9층 아저씨.


"담배연기 위로 다 올라온다구요! 아~C 진짜"


9층 아저씨는 약이 있는 대로 올라 한참을 소리 지르다 가셨다. 알고 보니 남편은 현관문 바로 앞 복도에서 머리만 바깥쪽으로 쭉 내밀고 여태 피워왔던 것. 본인은 주말에만 잠깐 피니 괜찮다고 생각했단다.(그게 핑계가 되니?) 며칠 전 뉴스에서 본 층간 흡연 사건이 떠올랐다. 요즘은 층간 소음이 아니라 층간 흡연 때문에 칼부림이 난다고, 나는 칼 맞기 싫다며 아까 찾아온 아저씨 보다 더 크게 악을 써댔다.



잠잠하던 어느 주말 오후.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 구멍으로 엿보며 누구냐 물으니 한 남자가 옆집이라며 자기소개를 한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주자 조그만 상자를 내밀면서 '남편분 담배 냄새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데, 자기 집에 어린아이가 있으니 다른 곳에서 피워달라' 정중히 부탁한다. 연신 죄송하다 굽신거리며 보낸 후 상자를 열어보니 차량용 공기청정기가 들어있더라는.(이 와중에 속으로 옆집 남자 센스 칭찬)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에게 최대한 차분하게 상황 설명을 했다. 그런데 이 인간이 또 귀찮아서 1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복도 끝 계단에서 폈다더라. 그 남자는 복도 끝집이었다. 난 또 발악했다.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고.





10년도 더 된 일이다. 남편도 이후엔 더 이상 이웃 간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시키지 않았다. 허나 남편은 여전히 흡연 중이다. 함께 외출할 때면 차에 타기 전이나 식당, 건물에 들어가기 전 꼭 담배를 피운다. 그때마다 핸드폰까지 들여다보고 있으니 늘 시간이 지체되고, 나는 우리의 시간이 도둑맞는 것 같아 언짢다. 공원이나 캠핑장같이 아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장소에서도 슬쩍 숨어 담배를 피우는 남편을 보면 곁에 아이들이라도 나타날까 신경이 쓰인다. 흡연이 금지된 산, 국립공원에서도 담배 피울 장소를 찾아다니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여기서 피면 안 된다고, 걸으면서 피지 말라고, 시간 없으니 빨리 피라고, 보기 싫은 담뱃갑 좀 치우라고 잔소리가 늘어난다. 남편은 흡연자의 권리를 외치지만 온갖 것이 신경 쓰이는 비흡연자인 나는 억울하다.



휴일 집에 있을 때면 뻔질나게 1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담배를 피우는 남편. 어차피 내려가는 김에 쓰레기 한 봉지라도 들고나가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는 남편이 얄밉다.


내년에 입주하는 아파트는 1층인데, 담배 피우기 더 쉬워진 남편을 생각하니 괜스레 성이 난다.

나갈 때 재활용 쓰레기라도 들고나가면 성이 좀 덜 나려나.


나는 오늘도 비흡연자 세 명이 사는 우리 집을 꿈꾼다.



덧. 오늘 5월 3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담배연기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1987년에 제정한

세계 금연의 날 이라고 합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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