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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16. 2023

부끄럽고 신나

지난주에 발행한 크림이(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가 다음 메인에 오르면서 조회수가 치솟았다. 그간 올린 글의 조회수 총계를 가뿐히 넘어버렸다.


들뜬 마음으로 조회수를 검색할 수 있는 통계탭을 들락날락했다. 아직도 브런치스토리 인기 글에 있는지, 다음 사이트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늦게까지 화면을 쓸어내리다 핸드폰과 함께 잠들었다. 잠든 내 모습을 봤다면 분명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조회수 뭣이 중헌디'  생전 찾아보지도 않던 사람이다. 이렇게 조회수에 목매는 인간임을 그날 알았다.

초보 작가에게 더 없는 조회수 폭등의 달콤함♡


나를 들썩이게 했던 수치는 정확히 5일 만에 돌아왔다. 평소 귀여웠던 조회수로.




한 달여 동안 이왕 쓸 거면 잘 써야지 하는 알량한 생각으로 글쓰기가 멈춰 있었다. 정용준 작가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은 후 '글더듬이에서 벗어나 그냥 써보자'라는 마음을 글로 남기고 부지런히 써오던 중에 생긴 일이다. 역시 쓰다 보면 실력도 늘고 조회수도 올라가는 건가? 잠깐 부풀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느 시점 시무룩해졌다.


사람들은 내 글을 읽은 걸까? 다른 글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조회수에 비하면 라이킷은 별로던데.. 내 글이 마땅치 않았던 걸까? 맞아. 글이 아니라 크림이 사진을 본 것이었겠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볼 줄 알았다면 생생하게 쓸걸, 세심하게 쓸걸, 재밌게 쓸걸. 생생, 세심, 재미 아직은 딱히 없는 재주까지 소환해 가며 후회를 했다. 비겁하게 댓글을 비허용 해놓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끄러움도 피어올랐다.


100편을 쓰면 내 글이 나아지려나, 1년을 끄적이면 좋아지려나. 들쑥날쑥한 기분으로 훌쩍 며칠이 지났고, 서랍 속 글들은 또다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좋아하는 은유 작가님 책을 읽었다. 읽을 때마다 동경과 질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작가님. 어찌 이리 잘 쓰시는지, 촘촘한 생각을 하시는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학생의 질문에 '나도 그거 때문에 만날 울어요'라고 말하며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시는지. 작가님 글에서 내 마음을 정확히 짚어주는 문장을 만나면 한없이 좋다.


처음엔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남들 앞에 내놓는 일이 쑥스러워 몸이 굽었다. 그래도 굽은 몸으로 꾸준히 쓰고 의견을 냈다. 안 쓰고 안 부끄러운 것보다 쓰고 부끄러운 편을 택했다. 부끄러움 총량의 법칙이 있는지, 왕창 부끄럽고 나면 한결 후련했다. 부끄러워야 생각하므로 부끄럽기로 자처한 측면도 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자기 인식이야말로 쾌감 중 으뜸임을 알았다.

은유, 『쓰기의 말들』, 유유, 2016, p.77




일기 같은 내 글이 여전히 쑥스럽다. 그래도 소리 내어 몇 번 읽다 보면 제법 정이 가기도 한다. 거울로 매일 보는 얼굴이 익숙해지듯 내 글도 눈에 익으며 정이 든다. 똑같은 얼굴이지만 살짝 나아지라고 어느 날은 마스크팩을 하고 어떤 날은 수분크림을 정성 들여 바르듯, 한참 지난 글도 다시 읽어보고 슬그머니 수정한다. 0.1%라도 나아지길 바라며 남들은 알아채지도 못할 퇴고를 반복한다. 조사 '을, 를‘ 를 빼본다. 소유격 조사 '~의'도 지워본다. 종결어미를 바꾸기도 하고, 눈 부릅뜨고 중복되는 단어도 찾는다. 소리 내 읽으며 어색한 부분, 오글거리는 문장도 골라낸다. 쓰고 나면 부끄럽다고 여겨지는 글인데도 수정하는 과정은 어쩐지 신난다. 조금이라도 내 글이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고쳐보는 일이 즐겁다.


그래. 부끄럽지만 뭐라도 쓰려고 '생각하는 나'는 제법 괜찮다(고 주문을 외워본다. 하하) 앞으로 왕창 부끄러워 보자. 후련한 마음이 들 때쯤 댓글창을 열어보자. 신난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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