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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an 19. 2023

남편의 죽음을 생각해 보다

김치찌개에 고등어 구이가 있던,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단조로운 듯 살짝 심심한 저녁식사 시간.

불쑥 남편의 죽음이 떠오른 건 그가 꺼낸 직장동료 이야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예전 직장에서 7년을 같이 근무했던 직원 관련 부고 문자를 건너 건너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나) 누가 돌아가셨는데?

남편) 남편이 죽었대. 애들도 둘이나 있대..


장례가 끝난 후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고 한다. 과장님(같이 근무할 때 부르던 호칭이다) 어떻게 알고 돈을 보내셨느냐, 원래 간이 안 좋았는데 갑작스러운 염증으로 손쓸 새도 없이 갔다, 과장님도 술 조금만 마셔라.. 흐느끼며 시작된 통화는 꺼이꺼이 울며 끝났다고. 이야기를 하는 남편이나 듣는 나 모두 말을 아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날 그 순간 느닷없이 떠오른 것이다. 내 앞에 앉아있는 저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면?


속물스럽게도 그럼 나랑 지우는 어떡하지? 일을 그만두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내 기분에도 너무나 현실적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남편이, 아이 아빠가 죽는다는데 떠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나 슬픔보다 남은 사람의 안온함과 살 궁리를 먼저 하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여자구나.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 생각이 떠오르고 더 깊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그리울까 하는 상상이 되지 않더라는. 정확히 말하면 상상이 안 된다기보다는 마음먹고 그려보려 해도 애써 외면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렇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던 것이다.






22살 예쁘고 착했을 때 남편을 만난 나는 7년을 연애하면서 조금 덜 착해졌고, 십수 년을 함께 사는 동안 야금야금 사나워졌다.(남편시점) 아이를 낳고는 일, 살림, 육아 모두를 잘 해치우고 싶어 늘 분주했고, 반대로 남편은 내가 너무 예민하다며 조금 대충 하라는 무심한 말들을 태연하게 내뱉어 날 서운하게 만들었다. 서운한 마음이 치밀어 올라 다투기도,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했던 나날들. 의미 없는 싸움을 반복하고 실망과 불만이 켜켜이 쌓여가던 시절을 지나왔다.


밥 먹을 때 원래 그렇게 쩝쩝 소리를 냈냐며, 숨은 또 왜 그리 크게 쉬냐며(축농증이 있는 남편) 7년을 사귀고도 어제 처음 만난 사람처럼 전혀 몰랐다는 듯 모든 게 마땅찮았다. 너무 미워 검색창에 이혼이라는 낱말을 검색해 보기도 했으니 권태기를 심하게 앓았었구나 싶다.


그런데 그렇게 권태롭고 미웠던 시기에도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날 깨달았다. ‘인간은 결국 다 죽는다’라는 단순하고 확실한 진리를 조금 이해했다면 그때 덜 미워했을까?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했으면 적당히 싸웠을까? 어차피 죽어 못 보게 될 사람이라면 서로 상처 주는 게 목적인 양 아무 말이나 그렇게 내뱉진 않았을 테지. 저녁을 먹으며 지나치게 곰곰이 지난날을 떠올려봤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모든 사람과 반드시 이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 외의 나머지는 다 추측이고 가능성입니다.
그 진실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과 한마디를 전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이 그 말을 꺼낼 시간입니다.
여러분만이 해줄 수 있는 말 몇 마디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후회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당장 바로잡으면 됩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날마다 죽음을 떠올리며 살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삶은 결국 멈춘다, 우리는 반드시 이별할 것이다라는 것을 순간순간 마음으로 기억한다면 조금 더 다정한 말과, 따뜻한 눈빛과, 친절한 태도로 타인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남편도 결국 타인)


그렇다. 난 지금, 남편에게 조금만 더 다정해지자는 얘기를 죽음 어쩌고 저쩌고 하며 거창하게 돌려 말하는 중이다. 슬쩍 살갑게 표현해 보자 스스로에게 글로서 최면을 걸며.


남편이 기다리는 말 몇 마디를 해주련다.

"고생한다, 수고했다, 고맙다, 우리는 사랑보다 깊은 유대관계가 무던히 쌓이는 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술 좀 적당히 마시고, 아프면 재깍재깍 알아서 병원 좀 가! 애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내가 다 챙기냐"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야박하다. 그러니 올해는 습관 하나를 추가해야겠다. 시치미 뚝 떼고 다정스레 말하는 점잖은 습관.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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