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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Feb 13. 2023

시시콜콜

이야기 나누고 싶다

오늘 무엇이 좋았고 힘들었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시시콜콜 나누고 싶었다.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에서



'시시콜콜'이란 단어에 한참 머물렀다. 발음이 귀엽고 유치하다. 조그맣게 시시콜콜을 내뱉어 봤다. 한 다섯 번쯤 나직나직 중얼거려 보니 다정한 느낌이 든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잘 살피지만 내 감정표현은 어색한, 친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까워진 후에도 이따금 낯을 가리는 내향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고, 오히려 혼자 있고 싶어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며 끄덕끄덕 공감은 잘 하지만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적극적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내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지는 못한다. 여자 형제가 없었으므로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난 여자사람에게 '언니 언니~'하며 살갑게 구는 것도 왠지 낯설고 어렵다.


수도권 대도시에서 다니던 직장을 호기롭게 관두고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 소도시로 간다고 했을 때,

 "거기 아는 사람 있어? 외롭지 않겠어?" 하며 걱정들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세상 편안한 나는 늘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오히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옛 직장 동료들도 마주칠 일 없는 새로운 곳이 너무 기대된다고 속으로 생각도 했다.






1년 반 전에 이사 온 이곳은 진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일터에서 아이 이야기로 같은 고민을 나누던 직원들도, 결이 맞는 동네 교육 동지도, 가끔 만나던 친구들도. 

허세 가득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채 새로운 도시의 하늘과 바다를 감상하느라, 낯선 길을 살펴보느라, 동네 모양을 구경하느라 그때는 혼자 매일 바빴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고, 직장생활과 살림을 병행하던 사람에서 전업주부로 환경이 바뀌니 지인들과 연락할 일도 나눌 이야기도 순서대로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생각하는 약간의 무심함과 상대방이 바쁠까 선뜻 연락하지 못하는 지나친 배려가 더해져 어른사람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점점 사라져 갔다.


전학 온 첫날부터 같은 반 아이와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친구를 사귄 딸은 이사 온 초반 종종 내게 물었다.    


"엄마 친구 사겼어?"


"어? 아니. 못 사겼어. 만날 기회가 없어. 그런데 괜찮아. 엄마는 혼자 있는 시간 좋아해"






그랬던 내가 책 속 '시시콜콜'이란 단어와 문장에 오래 머무르는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물론 남편과도 시시콜콜 얘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겪는 연애시절, 신혼시기. 한 시간이 넘게 통화하며 깔깔대던 그 시절. 다들 겪었던 유치하고도 찬란했던 날들. 지금은 그때만큼 미주알고주알 떠들지 않는다. 내가 읽은 책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남편이 즐겨하는 게임에 난 관심이 없다. 오히려 시시콜콜 말하다 보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싸움으로 번지는 의외성을 발견했기에 더 그렇다. 그렇다고 우리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다 염려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관심사를 존중하되 강요하지 않기, 자기만의 여유 시간을 취향껏 즐기기, 그러다 또 합체하여 함께하는 시간 보내기. 우리 부부의 암묵적인 행동패턴이다.


요즘은 이야기 나눌 상대가 꼭 오래된 관계, 직접 만날 수 있는 거리의 친구는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남편도 마찬가지리라. 남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서로의 환경과 현재의 관심사에 따라 상대방 이야기에 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40대가 되었는데도 쓸데없이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데 늘 조심스러웠고, 관계를 지속하는 게 버거울 때도 있었다. 허나 요즘은 같은 관심사와 목표를 가지고 형성된 새로운 모임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겁다.


작년 아이 학교에서 그림책 교육 지도사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함께 했던 엄마들과 그림책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엄마들의 나이도 직업도, 아이의 학년도 모두 다르지만 서로가 추천하는 그림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들을 시시콜콜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슬쩍 남편, 시댁 이야기로 빠져 실컷 수다 떨다 돌아오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최근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처음이라 낯설지만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 글쓰기를 위해 꾸준히 책을 읽겠다는 다짐, 허나 생각만큼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솔직한 고백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어플 하나로 문자화 되고, 녹음까지 돼 오디오 파일로 저장이 되더라. 그날밤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에어팟을 야무지게 꽂고 독서모임 오디오 파일을 들으며 잠들었다. 오랜만에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눈 기분. 한껏 다정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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