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새날 Jun 01. 2023

나는 왜 하고 싶은 게 없을까?

1-2.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나요? -ep.4


생각하고 보니, '하고 싶은 일'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겠네요. 생계를 목적으로 한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과 취향을 기반으로 하여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기 위해 하고 싶은 일, 두 가지로 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일치한다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중에서도 앞서 이야기드린 경우, '돈벌이와 연관된 일' 중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


저는 사실 '많은 분들의 인생 목표를 찾아드려야겠다!'라고 자신 있게 결정할 수 있을 만큼, 늘 하고 싶은 일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선생님을 해야겠다'는 명확한 생각이 있었고, 그것이 미술이냐 수학이냐를 놓고 고민하다 수학 선생님이 되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수학을 내려놓았던 시기에 '그럼 뭘 해야 하지?' 생각하다가 자연스레 미술을 다시 하게 되었던 거죠.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학창 시절 읽었던 해리포터에 영감을 받고 모방을 해서 글을 썼고 '작가가 되어야겠다' 꿈꾸기도 했습니다. 손재주를 활용해서 나만의 작은 상점에서 소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도 좋겠다는 상상도 했었지요. 한창 유튜브에 열을 올렸던 때에는 여행을 다니며 크리에이터로 사는 삶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들이 늘 따라다녔던 저는 최근 들어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주제의 모임을 오픈하고 진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눠본 덕분에 말입니다. 한 번은 독서모임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의 작가는 자신의 현재 직업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고 소개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그 모임에 참여하신 분들은 저를 포함해 총 10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계기가 있거나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본인의 직업을 선택한 사람은 저와 제 옆 자리에 앉은 분, 단 2명뿐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분도 저처럼 강사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최소한 절반 정도는 '선택의 이유'가 있을 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 분들이 '내가 이걸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좀 궁금했어요. '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하고 열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책의 저자처럼 특별한 계기가 없었지만 우연히 시작하게 된 그 일에서 적성을 발견하거나 기쁨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날, 늘 하고 싶었던 게 있었던 저로써는 저와 다른 분들이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제 나름대로의 답을 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빨간 동그라미 때문이었습니다. 집에 방문하시는 학습지선생님들께서 빨간색 색연필을 들고 제가 푼 문제지를 채점하시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가방 안 가득한 학습지들 중 제가 풀어야 할 학습지를 꺼내는 모습, 반듯반듯한 새 학습지의 첫 페이지를 펼치는 모습, 빨간 색연필로 체크를 하며 무언가를 설명해 주시는 모습, 빼곡하게 적힌 일정표를 확인하시는 모습. 모든 모습들이 멋져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졌던지, 저는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동네 전봇대에 붙어있는 학습지 샘플을 매일같이 걷으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누가 문제를 푼 자국도 없는 새 문제지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틀렸다는 표시를 하며 선생님 놀이를 했습니다. 그 열정이 얼마나 컸던지 집에 컴퓨터가 생겼던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는 한글로 학습지를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혼자서 빈 문제지를 채점하는 일이 지겨웠던지, 동생을 위해 문제지를 만들고 숙제까지 내주면서 선생님 놀이를 이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저는 즐거웠습니다.


'저주받은 아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썼던 때에도 마냥 즐거웠습니다. 밤새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손으로 글을 쓰는 것도 즐거웠지만 그것보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읽으며 노트 제일 앞페이지에 남겨준 후기글과 예약글을 읽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습니다. 아기자기한 글씨와 그림으로 다이어리를 꾸미며 시작했던 블로그도 재미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썼던 글이 네이버 메인에 소개되었던 기억은 여전히 무언가를 이어가는 원동력으로 남아있습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좋은 피드백까지 합쳐졌을 때, 저는 '이런 일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라는 상상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하고 어떻게 보면 철이 없습니다. 서른이 넘어서도 '저건 뭐지? 저건 뭐지?' 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바쁩니다. 오죽했으면 7년이나 만난 남자친구가 뚤레뚤레하느라 바쁜 모습이 꼭 시골 강아지 같다며 웃었습니다.





그 호기심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했지요.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함'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거나 결과를 내거나 수입이 오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겠구나, 그런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기까지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할까, 과연 그럴만한 자격이나 재능이 있을까, 그러는 동안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받거나 뒤처지지는 않을까, 내가 이 일을 해서 혹시라도 잘 안된다면 시간낭비 일 텐데, 그게 과연 생각만큼 재미있을까,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등의 걱정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정말 제 취향의 일이 아니라고 느끼거나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일 앞에서는 우물쭈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흐릿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겁니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재능이 있을지 모르니 일단 시도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많은 경험을 선물하듯, 어디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활력을 느낄지 모르니 뭐라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행동했을 때 '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계속하고 싶어' 알게 되고, 직업으로 삼으며 푹 빠져 지내고 싶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거야 알죠! 근데 그게 항상 좋지만은 않을 거 아니에요. 잘하고 잘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누구나 하죠." 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죠. 그래서 책 읽는다고 인생이 변하진 않더라며 단념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죠. 그런 분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만한 말발이나 경험담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저도 아쉽네요. 그러나 단 하나 분명하게 이야기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시도한 모든 것을 잘했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던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여지껏 사는데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소소하게 오픈 한 모임이 인기를 잃어가기도 했고, 야심 차게 자격증까지 얻어가며 시도했던 미술치료와 심리상담을 섞은 아날로그세러피 소셜링은 시작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만들어낸 플래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수차례 갈아엎으며 쌩돈도 들였고요. 누구보다 왕성한 호기심과 충동적이라 할 만큼의 행동력 덕분에 지난 몇 개월동안 했던 삽질만 해도 꽤나 됩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감정이 드는 때가 있긴 했지만, 후회가 되는 순간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뭐라도 시도해 볼만한 것이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걸요. 할까, 하지 말까 고민할 시간에 뭐라도 해보고 무언가를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여전히 시도해 볼 것이 남아있고 시도할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저는 행복합니다. 그것이 제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살며 멋들어진 좌우명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늘 삶의 태도에 관해 떠올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마음이 늙으면 몸도 늙는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멋지다며,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며 선망하는 분들을 보면 모두들 '늙었다'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분들이십니다. 그 자리에 만족하기보다 깨어있는 자세로 무언가를 배우고 겸손하며 밝은 에너지를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만인의 귀감이 됩니다. 그분들은 항상 우아하고 격이 느껴지며 매력이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그렇기에 아직 저에게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합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전에 불안감이 엄습한다면, 왠지 뻔한 결말이 예상되어서 자꾸만 멈추게 된다면,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한 번 떠올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분하고 평범하게, 특별히 튀지 않는 모습을 원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매력과 빛을 뿜어내는 사람들이 부러워질 것 같다면 한 번쯤 용기를 내서 뭐든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아, 이건 좀 아쉽네'라는 안타까운 느낌이 조금이라도 남을 것 같다면 귀찮음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한 발짝 내디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도해 본 사람'과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사람' 중 기왕이면 시도해 본 사람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아끼며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09화 나는 왜 재주가 없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