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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새날 Jul 25. 2023

공부가 하기 싫어도 한 번쯤 해보아야 하는 이유

1편: 나를 단단하게 하는 힘


'아, 공부하기 싫다...’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학생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성화에 등 떠밀려 억지로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꼭 해봤을 생각일 거예요. 지금도 그런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라서 ‘진짜 공부하기 싫은데, 이건 뭔 소리지’ 싶어서 이 글을 눌렀겠죠? 

하는 일이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이 만납니다. 사실 가고자 하는 대학이나 학과, 만들고 싶은 성적이 뚜렷한 학생들보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아요. 글을 쓰고 보니 몇몇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네요. 

함께 공부를 하면서 성적 향상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학생분들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항상 ‘목표’를 물어보는 것이 습관이에요. 어느 대학에 진학하기를 꿈꾸고 있는지, 성적은 어느 정도 올리고 싶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본인이 가고자 하는 대학이 뚜렷하거나 그런 대학이 없더라도 일정 등급은 꼭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찾아온 아이들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시간에 그 목표를 이뤄내더군요. 그와는 반대로 스스로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오랜 기간 동안 함께해도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래서 꼭 목표가 있었으면 하고 목표를 만들어보라고 첫 수업 날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분들은 ‘목표’를 만들기 전, 일단 ‘공부가 너무 하기 싫다’는 생각에 갇혀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밤늦도록 유튜브나 넷플릭스 보는 것이 너무 좋고, 게임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이 좋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것이 좋아서 ‘이런 것만 하면서 평생 살고 싶다’ 생각하면서 현실을 회피하듯 말입니다. 학업과 나의 미래에 보탬이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일단 좋으니까’ 먼저 하고 보는 거죠. 다이어트 중인데도 일단 달달한 간식을 먹고 보자 싶은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감정’에 휘둘려서 좋을게 뭐야?”라며 톡 쏘듯 한마디 해 붙이고 싶지만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이 생각납니다. 10대 시절에는 감정과 이성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온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해요. 뇌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이 ‘전두엽’은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관이랍니다. 이 부분은 20대가 되어야 완성이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10대 시절에 어느 날 갑자기 이러고 싶었다가 그다음 날엔 또 변덕을 부리고 싶어지고, 괜히 짜증이 치밀거나 화가 나고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는 사춘기를 겪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드리는 이유는,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지만 그건 다 ‘뇌’가 공사 중이라 그런 거니 조금만 침착해져 볼까요?”라고 시작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스스로가 왜 그러는지 좀 알면, 그래도 예전보다는 잘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부끄러운 지난날

이런 이야기를 해드리는 저는 얼마나 잘났냐고요? 저는 사실 공부를 그렇게 잘 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았던 사람이랍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수학 공부를 하며 아이들을 관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으며 나이를 먹다 보니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더군요. 그런 마음으로, 잘난 사람으로 잘난 위치에서 이야기를 드리기보단 “이건 제가 해봤는데 안 겪었으면 좋겠어요”싶은 마음으로 저의 이야기를 전해봅니다.

저는 사실 학창 시절에 별생각이 없었어요. 어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 좋다고 하니 그 정도 성적을 만들어서 진학하고, 수학강사가 되고 싶다는 작은 꿈을 꾸면서 수학과에 진학할 수 있을 만큼의 성적을 만들어서 대학을 진학했답니다. 그 이상을 꿈꿔 본 적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고만큼만 노력하고 고만큼의 결과를 냈습니다. 어느 대학 수학과에 진학할 성적이 충분한 것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공부도 하지 않았어요. 다들 열심히 한다는 고3 시절에 더 많이 자고 더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넌 대학 참 쉽게 간다”라고 고3 담임선생님이 놀리는 소리도 들었을 만큼요. 참 부끄러운 과거네요. 

그러고 나서 찜 해뒀던 대학에 무탈하게 진학하고 대충 대학 생활을 하며 수학강사 일을 바로 시작했고, 또 별생각 없이 20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경력’이라는 것이 쌓여갈 때쯤 어느 날 학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럼 선생님은 목표를 이루신 거네요?” 그 말을 듣고 제 기분이 어땠을까요? “그렇지.”라고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뭔가 씁쓸한 것이 올라와서는 한동안 가시질 않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뭔가 찜찜하고 개운치 못한, 그런 기분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후 계속 곱씹었어요. “왜 그런 기분을 느꼈을까?”

돌이켜보니 저는 그 대학 수학과에 합격한 일을 그렇게 기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당연히 합격할 것을 알고 있었고, 생각대로 합격했기 때문에 ‘다행’이었달까요. 고3 동안 열심히 놀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능에서 최악의 점수를 받았거든요. ‘이쯤 하면 되지’란 생각으로 고3을 보내고, 대학을 가서도 ‘이쯤 하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또 살았습니다. ‘대충 이쯤 하지 뭐’해서 맺은 결실이 스스로도 뿌듯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성취’라는 말에 걸맞지 않은 ‘그저 그런 결과’였을 뿐이었던 거죠. 그런 삶을 살면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흘려보냈고,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한순간에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씁쓸하고, 찜찜하고, 개운치 못 했던 겁니다. 

해야 할 일을 미뤄두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거나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별생각 없이 쇼핑을 다니며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자꾸 사들이는 일은 물론 저도 즐겁습니다. 사실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매일 독서실을 다니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학창 시절을 끝내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여기저기 많이도 쏘다녔습니다. 일찍부터 시작한 수학강사 생활 덕분에 벌어들였던 돈들을 펑펑 쓰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지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며 정작 해야 할 것들을 미뤘더니, 남는 게 없더란 겁니다. 그래서 즐거웠고,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저는 고2 때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생애 최고의 점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라도 버티고 살며 글을 쓰고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수학과에 진학하지도, 계속 수학 강사를 하지도, 이렇게 솔직한 글을 쓰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20대 시절을 추억할 것이 거의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긴 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본 것이 없거든요. 30대 중반이 되어 정신 차리고 책을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별게 없더란 겁니다. 고2 때 최고 성적을 찍으며 ‘성취감’을 느낀 이후로 한 번도 성취감이란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세끼 다 챙겨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벌면서 분에 넘치게 ‘선생님’소리를 듣고 살지만 ‘자신감이 넘쳤던’ 기억이 없습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기보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뭔가에 도전을 하거나 열정을 불태웠던 적이 없습니다. ‘대충 하지 뭐’라는 생각에 길들여져서 내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할머니가 되어서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았던 겁니다.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시죠? 딱 그 말처럼 말입니다. 제가 그랬어요. 

‘이대로 10년, 20년,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도 괜찮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괜찮지 않았습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기 자신에게도 너무 부끄러웠어요. ‘대충 살지 뭐’란 생각으로 죽을 때까지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산다면 상관없겠지만, 제가 겪어본 바로는 어느 순간 모른척하고 넘겼던 불쾌한 감정들이 솟구치는 날이 오더군요. ‘진짜 나 뭐하고 살았냐...’싶은 자괴감은 누군가가 툭 던지는 기분 나쁜 말보다 훨씬 더 대미지가 큽니다. 땅에 두 발 붙이고 서있을 힘까지 빼앗아가거든요. ‘바람 불면 휙 날아가 사라질 것 같은 먼지처럼 살았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흘려보낸 시간의 무게감과 절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얼기설기 쌓아온 무언가가 와르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듭니다. 정말이요. 

뭐라도 하면 남는 건 있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푹 빠져서 공부를 했을 때, 남는 게 있었습니다. 두 달간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싶을 만큼 열심히 했고, 전교 석차가 50등이 뛰어올랐습니다. ‘진짜 힘들다’ 싶을 만큼 운동을 했을 때, 남는 게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 싶을 만큼 운동하며 식이조절을 했고, 몸무게를 12킬로그램 감량했습니다. 거기에다 무언가에 열심히 매진하고 결과를 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뿌듯함은 내 안에 ‘힘’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습니다. 그 힘은 다음에 또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되기도 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쭈글해진다 싶을 때 나를 다시 붙들어 매주는 자신감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이걸 한 단어로 ‘회복탄력성’이라 하는 것 같더군요. 

이제서야 그런 깨달음을 얻다 보니, 대학이나 기업에서 그 사람의 성적이나 성과를 보고 평가를 하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누군가는 하기 싫다는 이유로 감정에 휘둘려서 하지 않은 일을, 자신의 목표를 위해 기꺼이 감내하고 버텨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르다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있지만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골라가며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들의 ‘정신력’과 ‘끈기’를 높이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정상까지 올라본 산이 없네요. 

다른 아이들이 놀 때 놀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결국엔 성취해 내기 위해서 노력했던 아이들의 성적을 보면서 그들의 ‘자질’을 평가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엔 ‘원래 머리 좋은 아이들도 있는데, 성적만 보고 판가름하는 건 잘못된 거 아니야?’ 싶었지만 이제는 이해합니다. 그런 탓을 하는 것 자체가 나와의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똑똑하게 할 말하고 제대로 생각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똑똑한 아이들은 그 시간에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아, 물론 ‘공부’에 한정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음악이든 무용이든 미술이든 체육이든 뭐든, ‘누구보다 열심히 몰입하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든 한 자라도 더 읽으려고 애쓰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목표를 만들어보고,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보고 어떻게든 도움을 받기 위해 사방팔방 애써보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성적’이란 결과도 따라오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로운 것이 내면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수학 공식이며 비문학 지문은 사회에 나가는 순간 별 쓸모없을지 몰라도 그것을 공부하며 쌓은 내공과 경험은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습니다. 

그래서 공부가 하기 싫더라도 ‘나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 순간을 조금 버텨봤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쉽지 않죠. 서른 중반이 된 저도 여전히 어려운 일인 걸요. 그래도 요즘은 책을 읽고 읽으며, 감정에 지지 않고 뭐라도 했을 때 남는 것이 있더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머리를 뜯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도중에 몇 번이고 갈아엎고 글쓰기를 중단한 적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봤을 때 그래도 어떻게든 머리채 붙잡고 끝까지 써낸 글은 온전히 남아서 빛나고 있더군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내고 있는 사춘기 학생분들께는 너무 고루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한 분께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쓰다 보니 조금 길어졌어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데도 말입니다. 두 편으로 쪼개서 마무리를 해봐야겠습니다. 

‘한국 학생으로 태어난 내가 불쌍해’라는 생각을 조금 거둬들이고, ‘이왕 이렇게 태어난 거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란 생각으로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단단한 ‘나’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공부'가 그런 '기회'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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