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표와 잉크

기억이 소멸된 자리에서

by 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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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가 날아간 것처럼 그때의 기억도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무슨 영화를 봤는지 누구와 봤는지 그 누구와 혹시 밥은 먹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너무 오래돼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다가, 기억은 다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명했던 잉크가 희미해진 것처럼.


영화표를 수집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는 종이로 된 표를 집까지 소중하게 들고 와서는 가장 아끼지만 필기용으로는 아까운 그런 애정이 담긴 공책에 붙이곤 했습니다. 그 옆에 짤막한 감상을 적기도 했고 어느 날은 그저 날짜만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하나둘 모으다 보니 공책은 어느새 영화표의 무게를 껴안은 채 두꺼워져 있었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고

영화표는 더 이상 종이가 아니라 작은 액정 안에서 숨 쉬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지금의 나는 오랜만에 그 공책을 발견했고 그때의 시간을 가늠해보려 했지만 서글프게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안 되더라고요. 영화표 위에서 활자로 숨 쉬던 잉크들은 이미 마르고 닳도록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나마 테이프로 붙여놓은 부분에는 어느 영화관에서 적립금을 얼마나 썼는지 정도만 남아있었거든요.


어쩌면 날아갔어야 할 기억을 잡아두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때는 막 따끈따끈하게 찍힌 잉크 같은 기억이었을 테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에 기억하려고 하니 그때와 같은 온도로 기억들이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 시절이 어제처럼 재생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공책을 들춰볼 때마다 그런 기대를 해요. 그렇게 붙잡아두려 했던 기억들도 어느샌가 내 품을 떠나는데, 고작 테이프 하나로 그때의 모든 순간을 잡아두려 했다니.


인간의 기억은 매번 다르게 찍히는 잉크 같아요.

매일이 다른 영화로 촬영되는 게 삶 같아요.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자꾸만 희미해지는 잉크 같은 기억들을 쫓으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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