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대한 두려움, 실패를 실패한 자의 반성문
할 일을 미루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고, 자조적인 마음가짐으로 산 적이 있다.
그 마음엔 '나만 그런 게 아니지.' '이러다가도 언젠간 일을 하긴 하니까.'라는 안일한 속내가 물들어 있었던 것 같다. 한때는 이런 마음이 나에 대한 무한하고도 건강한 신뢰라고 여겼다. '어찌 되었든 미루긴 미뤄도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명명 자체를 사랑했다. 두렵거나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그런 '착실한 나'를 잃고 싶지 않았고 '나도 사람인데' 라는 생각도 들어서 차라리 '기한이 넘어가버리는 바람에...'같은 변명이라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나도 모르는 새에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그런 마음.
내일은 힘들겠지만 당장 오늘은 미룰 수 있으니까, 잠깐 미뤄두어도 일은 어디 안 가니까, 지금 편안하니까 이대로 있자, 내가 어차피 다 할 테니까, 같은 비겁한 마음들이 나의 전반적인 생활방식을 좀먹어 가는 것도 모른 채.
편한 거?
좋지.
누가 불편한 것을 좋아하겠어.
그러나 우리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도 아닌 오로지 '나'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다. 그것은 나의 내일을 결정해주기도 하고, 돈이나 명예 심지어는 삶을, 미래를 결정해주기도 한다. 내가 나를 책임지고 먹여 살리는 거다.
나의 몫이다.
아무리 미루고 미뤄도 그 일을 꺼내 보고 만져 보고 요모조모 뜯어보며 해결과 출구를 찾아야 하는 건, 그리하여 깨끗한 상태로 다음 일을 맞이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이다.
그래도, 기어코, 결국엔 두려움에 할 일을 미뤄버린 나의 하루는 어떨까.
일이 미뤄지고 미뤄지면 나는 마음이 급해지고, 울렁거리는 심정으로, 한쪽 눈만 뜬 채 할 일의 실체를 열어본다. 그리고 좌절. 이럴 때면 과거의 나를 혼내고 싶다. 일찍 일찍 처리했어야 할 일을, 이렇게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크기가 큰 일을, 어쩌자고 지금까지 미뤄둘 수 있었는지, 강력하게 따져 묻고 싶다.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기 대회>가 있다면 나는 지겹도록 그랜드 챔피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었을 것만 같다.
미룬 자의 최후는 언제나 고통스럽고 힘겨운 모습을 하고 있다. 꾸역꾸역 일을 진행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히 할 일 목록에는 내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있었을 터. 개중에는 꽤 중요한 일들도 있었을 텐데. 나는 나의 미래를 아주 긴 시간으로 생각했나 보다. 오늘 하루는 24시간이겠지만, 내일의 하루는 48시간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마음 편해, 라는 어린 마음으로.
그 대가는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은 나의 할 일과 쏜살 같이 지나가는 나의 하루.
어쩜 이토록 한 치 앞을 못 볼까. 소주를 들이켠 듯, 지나간 시간이 쓰디쓰게 느껴진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눈앞에 놓인 일은 너무도 거대하고 나는 그 일을 해결할 만큼 훌륭한 사람도 아니며 일을 할 준비가 안 되어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작아지고, 할 일은 자꾸만 몸집을 키운다. '그러게 미리미리 했어야지!'같은 말들을 내게 쏟아내면 낼 수록 나는 그 주변에 접속할 수도 없이 작고 하찮아서 무기도 없이 사막을 배회하는, 승률 0퍼센트, 1단계 캐릭터처럼 한없이 쪼그라든다. 자책을 하면 다른 감정들도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약한 마음을 악(惡)하게 야금야금 베어 무는 마음.
두려움.
그래, 나는 두려운 거다.
실패하는 것을, 그 일을 시작함으로써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건넌다는 것을, 실패 이후의 삶을 어떻게 견딜 것인지를, 나는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렇게 웃자라고 좀먹은 방식으로 살다가는 더 이상 사람처럼 살 수 없을 것 같아. 매일 이전의 내가 미뤄둔 일만 뒤처리하며 삶을 연명할 수는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는 ‘해야 할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바꿔 적었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일처럼 목록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일들은 내가 하고자 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지, 나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네?라는 생각이 들자, 가벼운 마음이 우울했던 마음을 비집고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큰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나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지. 내 손으로 이룰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목록에 순서를 매겼다. 하나씩 처리하면 언젠가 끝이 날 일들이었으므로, 이왕 하는 거 시간을 잘 분배해서 '더' 잘 마무리 짓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는 어디로든, 무엇이든 하지 못할 것이라 믿는 사람이다. 완벽한 준비만이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굳게 믿었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기나긴 다짐의 시간을 걸어와야만 했다. 그래, 나는 다짐이 참 힘든 사람이고 그로 인해 행동도 미루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결국 일을 언제까지고 미뤄둔 것은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함과 실패에 대한 대처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이제 그 마음을 알아버렸으니 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크게 바뀐 것은 없다. 성취하는 길을 더 밝게 비춘 것일 뿐. 다만 그것뿐이다.
이미 우리는 할 수 있었을 거다.
두려움에 앞을 보지 못하고 바닥에만 드러누워 있던 거니까.
그곳에서 나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던 욕망을 조금 더 빨리 발굴해낸 것뿐이니까.
오롯이 내가 해낸 일로 나의 경력이나 나의 삶이 전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해야 할 일 지금 하자, 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고 생각을 바꿔서 말해본다면 우리는 덜 고통스럽고 덜 힘겹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무턱대고 할 수 있다고 외치자는 것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제목만 바꿔 써보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꾼 것은 크게 없다. 네 글자를 다섯 글자로 늘인 것뿐이다. 그러나 많은 것을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룬 것을 자책하지 말고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퍼붓지도 말고, 그저 내 능력 안의 일이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