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21 - 얼굴이 갈라질 것 같아

악건성의 크림 구매 일기

by 생강

21.


크림을 샀다. 겨울바람에 얼굴이 찢어질 듯 건조했다. 익숙한 브랜드에서 나온 크림을 샀고 질감은 어김없는 치약이었다. 내가 지금 치약을 바르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얼굴에 크림을 덕지덕지 펴 발랐다.


언젠가 로드샵에 가서 피부 상태를 측정한 적이 있다. 체험해보고 싶었고 직원의 말이 너무 화려해서 홀랑 넘어간 것까지는 좋았다. 측정기 화면에 빨간 글씨가 떴다. 악건성. 그래, 나는 건조함을 넘어 버석거리는 피부였다. 내용을 읽던 직원은 내게 잔소리를 섞어 화장품을 영업했고 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스킨, 로션, 크림을 모조리 샀다. 매장 밖을 나서자 얼떨결에 혼이 나고 물건까지 구매한 내가 웃겼다. 속는 셈 치고 악건성에서 건성으로만 넘어가도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킨을 버렸고 로션과 크림은 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여드름이 잘 안 나는 피부였는데 얼굴이 모조리 뒤집힌 것이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면 거울을 없애고 싶었다. 속상했으나 시간을 돌릴 수는 없으니 그 제품을 쓰지 않고 얼굴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유목민처럼 한동안 크림을 찾아 헤맸다. 바디 로션을 얼굴에 바르기도 했고 아이들이 쓰는 로션을 쓰기도 했다. 얼굴에 아무런 뾰루지도 나지 않는 크림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을 사서 썼다.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와 낙담, 좌절 없이 좋은 것을 획득하기란 어려웠으므로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고 열심히 후기를 수집하며 나의 악건성 얼굴을 보듬어줄 물건을 찾아 헤맸다.


나름대로 좋은 조합의 크림을 찾았다. 유분이 적은 크림을 바르고 얼굴과 몸에 바를 수 있는 로션을 바르면 얼굴이 평화로웠다. 그 조합을 일 년 넘게 유지했다. 그러다 작년 말 겨울이 시작되던 때, 찬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이 바삭바삭 부서지는 것 같았다. 꾸준히 수분을 보충하고 나의 크림 조합을 굳건히 믿으며 살아왔는데 이번엔 겨울바람이 압도적으로 이겨버렸다.


그렇게 치약 같은 나의 새 크림을 만났다. 할인을 해서 사고 싶던 것도 사실이다. 좋다니까 한 번 써 보고, 아님 말고. 그런 생각을 했고 아님 말자는 생각과 다르게 꾸준히 크림을 쓰고 있다. 구세주 같은 크림의 등장으로 내 얼굴은 사막에서 아스팔트 정도로 바뀌었다. 여전히 두세 시간마다 크림을 바르지만 괜찮은 발전이라 생각한다.


시도해서 다행이다. 믿고 있던 조합이 아닌 새로운 조합을 찾아서 다행이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올 겨울을 어떻게 견뎠을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시도해서 다행이다.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잠결에 치약을 바르고 있다는 느낌에 정말 치약이 아닐까 싶어서 크림 본체를 살펴본 것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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