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눈치 보는구나?
24.
저 사람 지금 나 미워하는 거 같은데. 내가 뭘 잘못했나. 잘못된 선택을 했나. 그냥 원하는 대로 해 줄 걸 그랬나.
타인의 반응에 예민한 나는 언제나 저런 생각을 한다. 내가 괜히 저 사람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아 마음이 요동친다. 속이 시끄러운 게 상당히 싫어서 어쩔 수 없이 타인의 결정에 같이 탑승한다.
겉으로 다정하게, 속은 텅 빈 채로 저 사람이 좋을 대로 이끌려가 주자. 껄끄러운 건 질색이므로 진심은 버리고 그냥 끌려가 주자. 타인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 나는 매번 넘어졌고 일어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인 것보다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쉽다고 생각했다. 남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내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여전히 어려워서 그래. 내가 내게 좋은 사람이 되면 주변에서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그럴 사람들이 아닌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겁을 먹고 타인의 선택을 나의 선택과 동일시하고 타인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받아들였다. 내 삶은 타인의 마음과 눈빛과 말 한마디로 결정된 선택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선택은 내 손으로 했지만 그 손을 움직인 건 타인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자주 하고 있다.
너 왜 눈치를 봐.
그 말을 듣고도 눈치 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의 기분이 나의 하루를 결정하는 걸 어떡해. 나는 모두가 평화로웠으면 좋겠고 내 마음이 요동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니 타인의 분위기를 잘 읽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뜻으로 저 말을 했는지, 내가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들이닥칠지, 어떤 말투로 대답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 온몸으로 느껴진다. ‘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님 삐딱한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 대부분 좋은 사람을 택하게 된다. 나는 꼭 내가 마음 가는 대로 하면 삐딱한 사람처럼 보이고, 그 상태로는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가 없어서 결국 또 좋은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다 체력과 마음이 동 나면 감정이 펑하고 터진다. 하얀 밀가루를 품고 간신히 버티는 풍선을 바늘로 톡, 찌른 것처럼 텁텁한 감정이 허공에 흩어져 시야를 가린다. 타인을 따라가던 나는 우두커니 서서 아무도 따라가지 않는다. 갑자기 멈춘 나를 두고 타인은 의문을 갖고 소리를 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내가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선택들을 원망한다. 그렇게 바닥에 오래 붙어있다 보면 지겨워서 걷게 된다. 걷다가 정신 차리고 앞을 보면 벌겋게 부어있던 마음이 새근새근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눈치 보고 사는 거 안 피곤하니?
피곤해. 너무 피곤해서 그냥 피하고 싶어.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고 싶어. 그런 말들은 삼켰다. 눈치 보지 않고 사는 건 너무 힘들어. 그게 잘 안 돼. 내 꼴이 그렇다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단 하루라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고 싶어. 그 말이 목구멍에 걸렸지만 언제나 그랬듯 뱉지 못했다.
내 삶은 내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