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36 - 새싹은 매일 자라고

고무나무로부터

by 생강

36.


우리 집에는 내 키만 한 고무나무가 산다. 베란다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고무나무, 사방으로 초록색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모양새를 볼 때면 생명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단단한 몸통 사이를 비집고 새싹이 고개를 내밀었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걸어갔고 안경을 쓰지 않아서 희미한 시력으로 나무를 봤고 순간 몸통에 연두색 점 하나가 묻었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새끼손톱보다 작았지만 분명한 새싹이었다. 거친 나무껍질을 뚫고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드디어 바깥으로 나왔다는 듯 개운한 기운을 풍기며 까슬까슬한 나무 표면을 밀고 올라와있었다. 하루의 시작을 새 생명의 발견으로 출발하다니. 그 순간 이파리가 밀고 올라온 그 힘을 사랑하게 되었다.


봄이 오는 소리. 작은 이파리가 단단한 껍데기를 밀고 올라온다. 그 힘이 날 살게 한다.


고무나무는 아주 가끔, 그렇지만 아주 많은 양의 물을 먹었다. 라면을 끓일 때 쓰는 오래된 냄비로 물을 세네 번 주어야 나무의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었다. 물을 주고 난 다음 날이면 훌쩍 자라 버린 고무나무를 구경하는 것이 요즘의 낙이다. 작은 이파리는 매섭게 뻗어나가고 가장 먼저 나온 이파리가 내 손바닥보다 큰 잎이 될 때에도 새싹의 시작점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파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파리의 성장은 고무나무의 경력이자 내 삶의 작은 행복이었다.


연두색에서 초록이 되기까지. 여린 잎에서 질긴 잎이 되기까지. 살아있는 것은 참 대단하지. 삶의 목적이 성장이라는 듯이 계속 고개를 내미는 힘으로 하루를 산다. 해가 나오든 비가 오든 구름이 끼든, 고무나무는 지금도 움트는 새싹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만약 새싹이 너무 작으면 어떡하지? 자라다가 시들면? 그다음 새싹을 틔울 수 있을까? 허공을 향해 곡선으로 자라는 줄기가 이파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꾸라지면? 그러면 어떡하지? 고무나무는 이런 걱정을 하기보다 다만 하루치의 생존에 집중한다. 도리어 걱정은 인간인 내가 잔뜩 하는 편이다. 고무나무는 그저, 산다.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새싹을 밀어 올리는 행위에 온전히 기운을 쏟는다. 새싹이 작아서 금방 시들든, 줄기가 고꾸라지든, 그것은 미래의 일이라서 스스로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순간에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듯 사는 것이다.


새싹이 자라는 걸 매일 보면서 힘이 났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단단한 몸통을 뚫고 나온 새싹은 단 하나의 생채기도 없이 맑고 화사하게 피어났다. 내면에서 차오르는 힘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생존에 집중하고 인간이 주는 물을 꿀꺽꿀꺽 삼키며 대부분은 태양 아래서 바삭하게 마르는 것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 힘으로 다시 하루를 사는 거지. 삶은 하루가 모여 쌓인 나만의 숲이니까 고무나무처럼 하루를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면 나도 언젠가 나의 숲을 돌아보며 뿌듯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아침은 고무나무 옆에 앉아 새싹과 함께 햇빛에 온몸을 바삭하게 지져야겠다. 물을 마시고 태양과 눈을 맞추고, 그리곤 하루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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