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40 - 사라지고 싶던 날에

나는 밤마다 나의 끝을 상상해

by 생강

40.


잘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물으면 너는 분명 잘하고 있다고 말하겠지. 스스로를 믿으라고 다정하게 말하겠지. 나는 나를 믿고 나아가다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과 마주하면 금방 좌절하겠지. 나는 그게 무서워. 나도 나를 믿고 싶어. 생각해 봐. 나는 정말 재능 없고 형편없고 바닥을 기는 사람인데 내가 나를 믿고 잘난 척하면 진짜 재능 있는 사람 앞에서 얼마나 초라해지겠어.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할 거야. 온몸이 초라하게 불타서 재가 될 거야. 나는 내가 무너지는 순간이 싫어. 짓밟히는 것 같아. 뭉개져도 사랑스럽게 뭉개지고 싶어. 초라하고 허무해서 울고 싶어. 뭣도 아닌 내가 정말 뭣도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냥 바스러지고 싶어. 다시는 태어날 수 없을 정도로 소멸하고 싶어. 꽃도 나무도 구름도 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밤마다 나의 끝을 상상해.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지.

손바닥으로 눈 주변을 비벼도 달라지는 건 없지.

붙잡을 손이 없어서 양손을 포개는 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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