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50 - 올해는 스페인어를 배워 볼까

스페인어 몰라도 원서는 살 수 있잖아요

by 생강

50.


스페인어 원서 책을 샀다. 영화 <코코> 그림책이다. 스페인 책방이라는 서점의 인스타그램을 구독한 지 꽤 됐는데 <코코> 그림책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오면 재빠르게 서점 홈페이지로 들어가곤 했다. 그 책을 오늘 샀다는 건, 이제껏 한 번도 구매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 꽤나 인기 있는 책이었으므로 긴장한 상태로 피드를 점검해야 했다. 언제 올라올지 몰라. 내 눈에 좋은 것은 남에게도 좋아 보이니까, 놓치지 않고 사야 해. 마음만 앞섰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다 오늘, 피드를 새로고침 하면서 불과 십 여분 전에 올라온 게시글을 발견했고 바로 홈페이지에서 코코를 검색해 결제창으로 넘어갔다. 오늘은 제발 성공하길 바라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제 비밀번호까지 꼬박꼬박 입력했다. 결과는 성공! 아주 가뿐한 성공이었다.


웃긴 사실은,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스페인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배우의 대사를 따라한 적은 많지만, 스페인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알파벳이니 더듬더듬 읽기야 하겠지만 옹알이 수준이다. 그럼에도 원서를 산 이유는 영화 <코코>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고 스페인어의 분위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와 언어를 사랑하면, 책을 살 이유는 충분하다. 일단 사놓으면 언젠간 읽는다. 나의 책장은 그런 방식으로 몸집이 커졌다.


올해는 스페인어를 배워 볼까.

작년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언어를 사랑한다는 게 신기했지만 스페인어의 매력이 나를 흐물거리게 만들었다. 올해는 배울 수 있을까.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하지도, 명령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언제나 배움 앞에서 머뭇거리는 상태로 일 년을 보내는 것이 아쉽고 쓸쓸했다. 그 마음을 가지고 뭐든 배워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 요즘은 크게 기쁘거나 크게 슬퍼서 다른 길목 앞에 서성거리는 중인데, 말이라도 ‘나 이거 배워볼까 봐.’라고 하면 언젠간 배우지 않을까 싶어서 아무 말이나 내뱉곤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고합니다. 저, 스페인어 배워 볼까 봐요. 언젠간 할 건데 그게 언제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할 거예요. 한다는 게 중요하겠죠? 일단 뱉고 봅시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배송 조회 버튼을 누르겠지. 언제 올까. 책이 오기 전에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찾아볼까. 단어 정도는 읽고 외울 수 있지 않을까. 독일어는 포기했지만 그것도 언젠간 이렇게 부드러운 과정으로 다시 내게 찾아오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무엇을 하든 기쁨을 얻고 싶다. 무너져도 다시 살아나는 힘과 함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강 긴 글 #48 -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