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54 - 나를 낮추면서 자존심 세우기

다정과 찌질함 사이에서

by 생강

54.


다정하기. 요즘의 가장 어려운 일 같다. 미안하고 억울하고 스스로가 야속한 상황에 타인에게 다정하기란 꽤나 힘에 부쳐서 그만 짜증을 냈다. 나도 모르는데 어떡하라고. 나는 지금 긍정적으로 대답 못해. 왜냐고? 나를 봐. 이렇게 찌질해서 화만 뻑뻑 내는데 어떻게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말에 그래, 나는 대단하고 잘 될 거니까 걱정 말자! 하고 밝게 말할 수 있겠어. 나는 내가 잘되길 바라는데 그만큼 노력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나를 경멸하면서 경멸을 즐기고,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나에게 자극이 될 거라 믿고, 그 믿음을 믿는 나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 믿음을 믿고 빠져나올 생각을 않지. 왜냐고? 그게 편하고, 안정감 있고, 나를 표면적으로 덜 큰 아이의 위치에 놓고 상황을 탓할 수 있으니까.


저 사람은 내가 힘든 걸 모르잖아.

다정하게 굴자.


그런 다짐을 하다가도 결국 제자리다. 또 무심하게 말한다. 꾸준한 것도 어려운데 다정하기까지 하려니 몸이고 머리고 터지기 직전이었다. 나에게도 나는 다정할 수 없었다. 먹은 것이 없어서 배설할 것도 없는 상태, 그러니까 다정할 체력이 소진되었다는 뜻이다. 나를 돌보고 감정을 돌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되면 타인에게 필요한 다정이나 위로를 보다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자리다. 또 무심하고 외면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다시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다가도 이럴 때면 한없이 고꾸라진다. 어둠 속을 쏘다니는 악의 덩어리가 된다. 울면서 욕을 하고 머리를 박고 눈에 힘을 풀고 초점이 느슨한 그림자가 된다.


그러지 않기로 다짐해놓고 결국 그렇게 한다. 나를 낮춰야 자존심을 세우는 느낌이다. 나를 낮출 수 있을 만큼 낮춰야 결과가 나왔을 때 최대한 칭찬을 받을 것 같고, 최소한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다. 나를 낮춰서 말하면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자만하지 않고 차갑고 냉정하게 스스로를 판단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내면은 덜 큰 아이의 상태를 고집하면서 표면은 현실 세계의 어른으로 위장한다. 두 얼굴의 나. 자신을 탓하는 건 자아의 붕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낮춰 남들에게 명확한 어른을 보이고 싶은 욕망. 거기서 오는 체력 소진. 다정에 쓸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 도달한다. 그마저도 나만의 고집이지만.


가끔은 허상을 좇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속부터 다정한 사람들이 있는데 뼛속까지 무심한 내가 멋모르고 삐걱대며 다정을 모방하고 있나. 그런 건가. 하는 생각. 어째 타인의 다정은 달콤한데 나의 노력은 매번 어색한가. 나는 얼마나 못될 수 있을까. 건강할 땐 얼마나 더 다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일이 잘되어야만 찌질에서 벗어나는 걸까. 언제까지고 다정과 찌질함은 나를 못살게 굴까. 몸과 마음이 느슨하고 여유로울 때, 나의 찌질함의 역사를 회상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까. 항상 다정하고 싶지만 무심하기도 한 나를 보며 지인들은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줄까. 변덕과 욕심이 범벅된 나는 잡탕 같은 감정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란 참 어렵고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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