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흘려 순간을 빛나게
53.
바깥은 싱그러운 봄이었다. 투표를 하러 가는 길이었고, 큰길과 곁골목 몇 개를 지나면 내가 졸업한 중학교가 나온다. 올해 투표 장소는 체육실이었다. 지난번엔 급식실이었는데. 사실 체육실이 어딘지 기억도 안 나.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졸업한 지 오래됐다며 장난스럽게 내 나이를 말했다. 엄마와 나는 대부분 그런 흐름으로 장난을 친다. 봄의 햇살이 아스팔트를 따스하게 데우고 있을 때 우리는 꽃이 예쁘다, 나무가 푸르다, 목련이 아직 피어있네,라고 중얼거리며 손을 잡았다. 첫 번째 골목에서 두 번째 골목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야가 햇빛에 잠식당하는 오후 네 시, 길가에서 자식을 꼭 껴안는 어느 아빠를 마주쳤다. 고등학생 같은데, 어딜 보내는 걸까 아님 시험을 보러 가나. 아이는 휘청거리며 아빠의 포옹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고 아빠는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고 두세 번 강하게 토닥이더니 금세 몸을 떨어뜨렸다. 아빠는 길에 서 있었고 아이는 반대편 길로 쭉 내려갔다. 뒤를 돌아보면 그가 아이의 모습이 흐릿해질 때까지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크고 따뜻한 포옹은 아이가 받았는데 왜 내 마음이 일렁이지. 아이를 쓰다듬은 것은 아빠인데 왜 내가 울컥하지. 엄마는 그들을 보지 못한 눈치였다. 우리는 학교를 향해 계속 걷고 있었으므로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으나 나는 아이와 아빠의 크고 따뜻한 포옹이 잔상처럼 남아서 눈을 깊게 깜박였다.
학교에 당도하려면 마지막으로 큰 골목을 지나야 한다. 왼쪽에는 대부분 빌라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도로로 이어지는 얇은 골목이 있었다. 엄마는 날이 좋다며 어디를 가고 싶고 어디 산을 갔는데 좋았고 꽃이 예뻐서 기분이 좋았다며 봄 냄새나는 말을 했다. 엄마와 팔짱을 단단히 끼고 걷는데 오른편 건물 앞에서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작은 아이가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은 고양이 세 마리가 종종 배를 깔고 낮잠을 자는 핫 플레이스였는데 지나가던 운전자도 최대한 속도를 낮추고 고양이를 구경하는 마성의 골목이었다. 엄마, 저기 봐. 애기가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어. 아이구, 그러네. 귀엽다. 이 동네에 고양이가 참 많아.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도 많더라. 에구 몸도 작은데, 찻길은 위험하겠다. 엄마는 금방 시선을 돌렸고 나는 평온한 표정으로 고양이를 쓰다듬는 아이를 쳐다봤다. 귀는 엄마에게 향해있으나 눈은 그들에게 향했다. 고개를 꺾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진 후에야 시선을 거뒀다. 조심스레 손을 뻗는 아이와 코를 들이미는 고양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투표를 마치고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여기엔 원래 벤치가 아니라 맨바닥이었다, 교문은 검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었다, 아니, 담장이 초록색이었나, 그것보다 내가 넘어져서 발목을 다친 곳이 이 계단이고, 저어기 보이는 건물은 체육관 같은데 원래는 핸드볼 경기를 하거나 체력 검사할 때 지그재그로 달리던 매끈한 초록색 바닥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주었다. 들려주었다기보단 봇물 터지듯 나오는 과거 회상이었지만 엄마는 나름대로 재미를 느낀 듯했다. 엄마, 나 교문 앞에서 선도부로 서서 애들 넥타이 검사도 했었어. 그랬어? 비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 교문 앞에 서 있어야 했는데 옆에 부원 하고 거리가 가까우면 그 애 우산이 내 우산 밑으로 들어와 내 자리를 침범하곤 했어. 그랬구나. 근데 벌써 졸업한 지 십 년 정도 됐네. 그렇게나? 그럼, 엄마 딸도 늙는 걸. (엄마의 웃음). 엄마랑 나랑 같이 늙는 거야. (엄마의 더 큰 웃음).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걷는다. 아까 그 건물에서 더 앞 쪽, 바로 그 지점에 작은 담장처럼 돌이 쌓여 있는데 거기에 작은 아이와 고양이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엄마, 저 애기 아직도 있어. 간식 주려나 봐. 어머, 그렇네. 아이는 인형이 달린 검은색 책가방을 꼬물꼬물 열더니 지퍼백 형태로 담긴 마른 간식을 꺼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힐끔 아이를 쳐다봤으나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옹, 애옹, 애오옭 하고 우는 고양이들에게 순서대로 간식을 나눠주었다. 착하고 침착하고 따뜻한 아이네. 봄 같은 아이구나. 나는 엄마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가는 길에 고양이를 세 마리 정도 더 보았고,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았다. 따뜻한 날씨는 사람, 동물 할 거 없이 모두 사랑하는 날씨였다.
집 근처에 새로운 케이크 가게가 보였다. 엄마, 케이크 사 줄게. 엄마가 좋아하는 크레이프 케이크다. 저녁은 저걸로 할까? 좋지. 딸이 사주네~ 엄마 신나. 몸을 살짝 흔드는 엄마가 귀여워서 지갑을 꺼냈다. 케이크 하나에 저리 기뻐할 수 있을까. 자주 사주고 자주 손을 잡고 자주 눈을 맞추는 딸이고 싶은데, 오늘만큼만 해도 엄마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오늘은 엄마랑 봄을 짧게라도 만끽해서 좋았으니 그거면 됐지. 다시 엄마 손을 잡으면 되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발을 맞추며 집으로 가면 되지. 봄 아래서 그렇게 살면 되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손엔 케이크를 다른 한 손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날은 행복해도 위로를 받고 싶고 아무 일 없어도 봄 같은 포옹이 필요하다. 그날이었나 보다. 아이를 깊이 껴안는 아빠의 모습과 그런 아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 햇살을 덮은 고양이와 아이의 모습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던 내게 큰 위로가 됐다.
물론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 내가 남을 보며 초라한 날도 있다. 나는 초라하든 아니든, 어떤 날 어떤 남에게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누군가 날 안아주거나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은 내가 괴로울 때 통하는 위로 방식 같고, 진심을 흘려 순간을 빛나게 하는 사람들은 저들도 모르게 위로의 향기를 뿜어내는, 잔잔한 위로 같다. 좋다. 살고 싶다. 하루를 꾸역꾸역 살며 다만 티 내지 않는 나는 그들에게서 내일을 발견한다. 봄 햇살도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데 한 몫했고. 그래서 엄마의 손을 꼭 쥐고 걸었다. 위로받은 몸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싶어서.
곁골목의 사람과 고양이들이 느슨하고 사랑스러워서 집에 돌아와 일기를 썼다.
[동네 길냥이 총출동,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봄. 그리고 엄마랑 짧은 데이트. 오늘은 오늘이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