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살되, 가끔 둥근 사람이 되는 거지
59.
오른쪽 팔에 멍이 들었다. 노르스름한 연두색.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 알 수 없어서 그저 다쳤나 보다 하고 넘겼다. 그것이 벌써 삼 일째다.
너는 덤벙대기보단 둔한 거 같아.
아침에 눈을 뜨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상처를 발견하곤 했다. 침대 머리에 손을 박았을까, 자기 전에 어디서 부딪혔을까, 종이를 만진 기억이 없는데 왜 베였지. 피가 났는데 피가 난 것도 모르고 살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상처의 출처를 짚다가 금방 포기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넘겼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고 덤벙대는 게 아니라 둔한 것이라 했다. 정말 둔한 건지 아님 둔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다 보니 정말 둔해진 것이냐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둘 다,라고 답했다.
눈치가 빨라서 속이 시끄러워. 차라리 둔한 게 나아.
둔해지려고 노력하면 정말 둔하게 살 수 있나.
나는 내가 모르는 일을 모르는 채로 견딜 자신이 있나.
나는 몸에 난 상처에 둔한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캐내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아닌 돌아가는 분위기와 공기의 흐름 같은 걸로 사람과 상황을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다치는 것과 별개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꽤 예민한 사람이다. 분위기의 결이 달라지면 예민함을 곤두세운다. 그건 나의 특성이자 나를 찌르는 바늘이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 게 되는 것들로 속이 시끄럽고 피곤했다. 알고 싶지 않은데 알아버린 것과 알고 있었는데 점점 모르게 되는 것 사이에서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마저도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지만.
둔해지면, 나의 특성 중에 하나를 잃는 것 아닐까?
내세울 게 없는 나는 더 이상 무엇이라도 잃으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그런 고민을 했다. 예민한 기질을 더 좋은 무기로 만들 수 없을까. 예민함 때문에 피곤하다면 반대로 예민함 덕분에 나름대로 생존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데. 둔하게 살고 싶어 해도 사실 예민함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선택적으로 예민해지는 거야.
나는 나로 살되, 가끔 둥근 사람이 되는 거지.
그건 나를 버리는 게 아니고 보호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나로 살고 싶은 나를 지키는 일.
그뿐이야.
지금은 둔할 땐 둔하고 예민할 땐 예민하다. 예민함을 기저에 두고 살지만, 오로지 나를 위해 신경을 끌 때도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일련의 훈련을 했다. 작지만 나를 지킬 무기를 만들었다. 저 사람의 폭언을, 눈빛을, 이 상황을 내게 너무 깊이 끌고 오지 말자. 저건 내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 자리에 있었을 누군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단지 그 자리를 지나고 있던 게 나였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나는 평생 나를 지키고 다독이는 일에 몰두하다 죽을지 모르겠다. 그게 나의 임무고 나의 운명이라도 되는 것 마냥 살 것 같다.
노르스름하고 연두색인 멍을 본다. 나를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아프지 않은 선에서 나는 둔해질 수 있고 그렇게 아낀 마음을 예민해야 할 곳에 쓸 수 있다. 꽤 효율적으로 나를 관리하는 것 같잖아?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 정도는 해야 돼. 나를 지킬 건 나밖에 없으므로.
나는 온 평생을 나를 숨기는데 쓰는 사람, 팔에 든 멍을 가만히 누르다 잠드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