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아주 우렁찹니다
62.
해바라기 씨를 샀다. 먹는 씨 말고 심는 씨. 작년엔 토마토와 바질을 심었다. 올해는 해바라기를 심는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자꾸 심는다. 흙 속에 미련을 심는 것처럼 씨를 심는다. 그러고도 희망이 피어나길 기다린다.
너는 무슨 꽃이 좋아.
튤립.
또.
해바라기도.
도태되는 기분이 들면 씨앗을 산다. 올해는 해바라기다. 바빴던 내게 선물을 줄 요량으로 씨앗을 고르다가 해바라기 씨를 고른다. 집으로 돌아와 작년에 죽은 선인장이 있던 화분을 꺼내 닦는다. 흙을 채우고 물을 뿌린다. 화분 가운데에 손가락으로 씨가 들어갈 자리를 만든다. 해바라기 씨는 생각보다 크다. 흙을 더 깊게 판다. 씨를 넣고 흙을 덮는다. 물을 뿌리고 햇살이 지나갈 자리에 화분을 둔다. 해바라기는 특히 싹이 크다. 작은 싹은 귀엽지만 큰 싹은 우렁차다. 크게 자라는 잎은 큰 성취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해바라기는 예쁘다. 노란 꽃이 손바닥만 하게 피어날 것이다. 벌써 기분이 좋다. 너의 성취를 나의 성취로 느낀다. 기괴하고 사랑스러운 과정으로 마음을 채운다.
좋은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자꾸 심는다. 뭐라도 피어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토마토를 심었던 건 토마토를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토마토 새싹이 나는 걸 보고 싶었기 때문에. 바질을 심었던 건 바질을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바질 새싹이 나는 걸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탄생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다. 나는 탄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뭐든 새롭게 자라는 걸 보고 싶었던 거다.
싹이 움트고 뿌리가 뻗어나가는 것은 개운하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싹이 나는 것보다 많은 시간이 든다. 당장의 성취를 보고 싶어서 씨앗을 심는다. 물을 주고 베란다 문을 열어 햇살에 가둔다. 나는 널 방금 심었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싹이 나길 바라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인간이란다. 그래도 널 사랑해.
다행히 해바라기는 잘 자란다. 어제 화분 위로 옷걸이를 떨어뜨려서 잠시 휘청거렸지만 나무젓가락으로 지탱했다. 오늘은 젓가락이 없어도 홀로 잘 자랐다. 분갈이를 해줘야 할 것 같다. 선인장은 작아서 작은 화분에서도 잘 자랐는데 해바라기는 우렁차서 더 큰 화분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성취에서 성취로 넘어가는 과정, 분갈이를 아주 신나게 할 것이다.
마음이 복잡하면 씨를 심는다. 흙냄새를 맡는다. 햇살에 나를 가둔다. 흔들리는 이파리를 가만히 본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렇게 외치고 다시 일어나 펜을 잡는다.
해바라기는 아직 자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