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으니까 빨리 해치우는 거야
68.
쉬는 날은 쉬는 날이 아니다. 일어나서 환기를 시키고 화분에 물을 주고 요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밀대로 먼지를 닦고 세탁기 알림에 맞춰 섬유유연제를 넣고 밀대에 안 붙는 먼지는 작은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그제 널었던 빨래를 접고 새로운 빨래를 널고, 밥을 차리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물을 끓이고 차를 내리고 책상에 앉으면 벌써 오후다.
너 진짜 부지런하다.
그럴 때면 그저 웃었다. 부지런의 기준은 무엇인가. 쉼 없이 움직이는 것? 할 일을 미루지 않는 것? 나에게 부지런이란 게으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국을 끓이고 야채를 볶으면 냄비와 팬이 설거지 거리가 된다. 그뿐이랴. 재료를 썬 도마, 국자, 간을 보던 수저, 집게, 기름이 튈까 봐 덮은 뚜껑, 양념을 닦은 행주. 설거지는 늘어나고 나는 게으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봤는데 결국 고통받은 건 나였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알아서 부지런하게 사는 거다. 미루면 끝까지 미룰 사람이므로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오늘 저녁에 쓸 냄비는 없다. 게으른 나를 위해 부지런한 내가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마른 그릇을 상부장에 넣고 쟁반을 하부장에 넣는다. 국자와 집게는 화구 아래에 정리하고 나무로 된 젓가락은 물기를 닦아 수저통에 넣는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저녁을 차려 먹을 수 있다.
귀찮아서 하는 거야. 귀찮으니까 빨리 해치우려고.
완성이나 해결이 좋다. 해치우고 다음 일을 하는 게 좋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안 그러면 영원히 미루고 미루다 썩어 문드러진 마음만 남는다. 그렇게 회복 불가능한 마음만 수천 개다. 시도하지 않은 마음은 증발할 수 없고 썩은 채로 영원히 남는다. 그게 싫어서 일과를 짠다.
별거 아닌 것을 매일 하면 별 게 된다.
완성이 되고 어느 날 성취가 된다.
후회의 반대말은 성공이 아니라 시도일 것이다.
나를 가꾸고 집 안을 가꾸면 어느새 하루의 반이 사라지지만, 생각은 생각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나눠서 실행한 게 뿌듯하다. 나는 생각을 아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라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 종일 생각만 하다가 울기 때문에 ‘힘들다, 그렇지만 해낸다.’ 같은 말을 읊는다. 반점의 앞뒤로 후회와 도전이 보이지만, 나는 잡생각 때문에 우는 나도 떨면서 시도하는 나도 두고 갈 수 없다. 그러니 생각은 하되 손과 발은 움직일 것. 귀찮아서 부지런한 나에게 매일 내뱉는 말이다.
이 모든 건 미룰 때까지 미뤄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빨래와 청소도 아주 잘 미룬다. 나만 손해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진. 어차피 모두 나의 일, 나는 내가 먹여 살려야 한다. 내가 심은 씨앗도 내가 먹여 살려야 하고 환기시키느라 열어둔 문도 내가 닫아야 한다. 창밖의 풍경을 보려면 문을 열고 닫는 부지런함 정도는 갖춰야 한다.
요가 매트 위에서 나의 머리 무게를 가늠하며 내일 빨래를 몇 번 돌려야 하는지 생각한다. 검은 옷과 흰 옷을 구분하지 않고 빨래 통에 쑤셔 넣은 것을 후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