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지만 그게 아니어도 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69.
남을 미워하는 데 인생을 할애하는 사람을 보면, 이젠 안타깝다. 나에게도 미운 사람이 있고 내가 미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전보다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는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에 책을 한 장 더 읽는다. 미워한다 한들 내가 바라는 만큼 그들이 멸망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선가 벌을 받겠거니,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워. 나는 미운 사람이 너무 많아.
지금보다 더 어릴 때, 나는 관계에 집착했고 무리에서 밀려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으며 홀수가 되면 나만 홀로 남을 것을 걱정했다. 그들과 깊은 유대감을 갖기보단 어떻게든 곁에서 버티는 삶을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는 ‘혼자’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다수의 목소리가 기준이 되었고 (여전히 그렇지만.) 무리에서 동 떨어진 사람을 꺼렸다. 나는 미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악몽을 자주 꿨다. 그래도 해결되는 건 없었다. 어김없이 아침은 왔고 나는 집에서 튕겨져 나와 무리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원치 않는 사람을 원하듯이.
혼자가 어때서.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며.
현재는 혼자를 아주 흠뻑 즐긴다. 넷 보단 셋이 좋고 셋보단 둘이 좋고 둘 보단 하나가 좋다. 나에게 집중하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헤치는 과정을 즐긴다. 나는 나에게 관대하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혼잔데 나는 나에게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나를 챙겨야지 남을 챙길 수 있는 힘도 생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종종 남을 열심히 미워하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어릴 땐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특징을 본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묻은 말투, 업신여기는 태도. 부단히 애쓴다, 싶다. 남을 깎아내릴 때마다 드러나는 건 본인의 위치라는 것을 모른다는 듯 묘하게 당당한 저 얼굴. 내가 저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 순 없지만, 저 사람의 시간이 내 시간이 될 수 없어서, 그가 사람을 미워하느라 쓴 시간을 줍고 싶었다. 아깝잖아, 그럴 거면 차라리 나 주지.
보통 그런 분위기는 웃음이 낄 틈이 없는데 나는 종종 피식거림을 참느라 매우 힘들다. 안타깝다. 더 좋은 것에 시간을 쓰면 될 텐데. 본인의 선택이라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줄 때마다 알아서 잘 멸망하길 바란다.
나에겐 하루가 너무 짧다. 물론 나도 누군가를 열심히 미워하기도 하지만, 이전보다 더 짧게 미워한다.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나를 굽히지 않고, 원하는 것을 말하고, 원치 않는 것을 말하고, 사랑할 땐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살기에도 바쁘다. 어릴 적에 많은 사람을 미워했으니 남은 인생은 알뜰하게 사랑해야 한다. 이미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으니, 이젠 나를 되찾아와야 한다.
그러나 힘겨운 시절은 깊이 남아있다.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를 시간들을 세어보다 눈물이 났다. 그 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말하지 않은 시절은 나를 괴롭히고 나는 아무도 없는 길을 홀로 걸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남을 덜 미워하고 나를 사랑하며 좋은 사람을 발견하고 나를 안아주는 무리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숨을 쉰다. 미운 사람들의 얼굴이 희미하다. 시련을 겪었으니, 지난 일은 어찌할 수 없으니, 그저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지만, 더 좋은 시절을 통과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다 커버린 마음이 어린 나를 쓰다듬는다. 나는 세상이 밉던 그 작은 아이를 위해 오늘도 산다. 그때보다 성숙한 마음으로 나를 지키고 사랑을 지킨다.
미운 마음이 날 좀먹었지만, 꽤나 잘 큰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