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73 - 지붕 위의 고양이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곳에서 오후를 즐기는 고양이

by 생강

73.


우리 집 부엌엔 작은 창이 있다. 건너편 주택의 지붕이 빼곡하게 보이는 시야인데, 어느 날부터 그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날에 지붕 위로 고양이가 올라온다. 설거지를 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고양이가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놀랍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 아이를 지붕이라고 부른다.


저기 봐, 지붕 고양이 또 왔어.

어떻게 올라갔을까.

아이고, 몸 뒤집네. 해가 뜨거운가 봐.

바람 부니까 내려가네. 잔잔한 날씨를 좋아하나 보다.


지붕이는 햇빛을 싫어한다. 해가 비추는 경계만 알뜰하게 피해서 눕는다. 처음에는 지붕의 끝 부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잠을 자더니 해가 쨍쨍한 날이면 그늘진 곳을 찾아 점점 안 쪽으로 들어온다. 지붕이가 안 쪽으로 올수록 나와의 거리는 가깝다. 방충망이 달린 문을 드르륵, 하고 열면 지붕이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나를 깊이 쳐다본다. 내가 고개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면 지붕이도 고개를 돌린다. 네 발은 하얗고 몸은 갈색과 회색과 노란색이 적절하게 섞여 오묘한 빛을 낸다.


본인만의 안식처를 찾은 거 같지.


지붕은 지붕이의 쉼터였다. 그 누구도 지붕이를 침범할 수 없었다. 온전히 그 아이의 영역이었고 가끔씩 나 같은 인간 하나가 문을 열고 물소리를 내며 설거지를 할 뿐. 그런 소음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지붕이는 꼬리까지 철저하게 말아 동그란 모양으로 오후를 즐긴다. 그런 지붕이의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던 나는 창문 앞에 의자를 두고 차를 내리고 사과잼을 바른 식빵을 씹으며 지붕이의 휴식을 관람했다. 따뜻한 차와 새콤한 잼이 입안에 맴돌 때, 작은 몸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며 평화에 위로받고 고단했을 고양이의 낮잠에 눈물이 났다. 나는 두 시간을 앉아있었다. 저 위에서만큼은 지붕이가 누구보다 평화롭기를 바라면서.


지붕이가 나타날 때면 마음이 놓였다. 배를 채운 고양이들이 그제야 휴식을 즐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만의 판단이지만, 지붕 위의 지붕이는 잔잔한 바람을 즐기다 앞발로 단장도 하고 길게 늘어졌다가 몸을 말기도 하고 사람처럼 눕다가 벽돌 사이에 낀 무언가를 한참 바라보는 고양이었다. 그야말로 휴식을 즐기는 고양이었다.


길에서 지붕이를 만난 적은 없다. 창문으로 얼핏 봤을 때 임신을 한 것처럼 배가 크고 늘어져있었는데 가까이서 봐야 알 것 같다. 더 잘 먹고 더 잘 자야 하는 몸으로 매일 어디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항상 오던 시간에 보이지 않으면 내가 모르는 새에 다른 집 지붕 위에 터를 잡았나, 하는 생각도 종종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대부분은 내 눈앞에 나타났으므로 그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길 위에서 험난하게 살다가 지붕 위에서 평화를 누리는 아이의 삶을 멋대로 판단하지 않기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깨끗한 물과 사료를 얻어먹고 있기를 바란다. 길 가다 마주치면 곧바로 내가 접이식 그릇에 간식을 담아 조용히 내밀 텐데. 지붕이 손에 닿는 거리라면 매일 깨끗한 물을 줄 텐데.


이젠 지붕이가 어디서 어떻게 지붕 위로 올라왔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시니컬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어떻게든 방법을 갈구해서 올라왔겠지. 그러고도 남지. 아마 넉살 좋게 어디선가 사료를 얻어먹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어서 좋다. 아무도 너를 건들 수 없어서 좋다. 온전히 너의 시간에 너의 장소에서 쉴 수 있어서 좋다.


지붕아, 나는 네가 나타나면 콸콸 틀던 물을 줄이고 천천히 설거지를 해. 혹시나 물소리에 네가 깰 까 봐. 길에서 마주치면 꼭 인사할게. 나 고양이 밥 주려고 휴대용 접이식 그릇 들고 다니는 사람이야. 내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에게 친절을 얻길 바라. 지붕 위에서 편히 쉬다 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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