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72 - 불면의 밤

변덕이 심한 나를 달래는 건 고달프고 짜증나는일이다

by 생강

72.


비가 쏟아진다. 밤새 잠을 설친다. 분명 열한 시 삼십 삼분에 눈을 감았는데 열두 시에 깨고 한 시에 눈을 감으면 두 시에 깬다. 세 시에 한 번 더 깨면 여섯 시까지 자고 여섯 시 반에 비몽사몽으로 깬다. 요즘엔 이런 날이 없어서 푹 자는 밤이 익숙한데 어젯밤은 자고 깨기의 연속이었다. 자도 자도 끝없는 피곤함으로 하루를 살고 나니 오늘 밤은 더욱 피곤하다.


불면의 날이 늘면 삶의 질이 뚝뚝 떨어진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모른 채 잠이 달아나는 순간만 경험한다. 나를 못 자게 할 거면 무엇 때문인지 알려줘라, 이 몹쓸 몸뚱이야. 이 생각만 가득 찬 머리야.

이유 없이 불안하면 이유를 찾다가 불안에 갇힌다.


어제는 분명 이유가 있는 불안이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외면하는 건지 정확한 이유를 못 찾은 건지 모르겠다. 울다가 얼굴에 열이 오르고 발이 시려서 다리 사이에 발을 넣고 은은하게 울다가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잠이 달아났다. 분명 이유는 있는데 내가 외면하는 중 같다.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나는 완벽했고 상냥했고 배려심 넘쳤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겉으로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일찍 침대에 누운 날인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가.


누가 날 부정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더 나은 삶을 고민해봐도 나는 여기에 정체되었고

이 정도 했으면 그만 울 때도 됐는데 자꾸 울컥해서 나를 자책했다.


여러 생각이 얼기설기 엮여서 나를 덮쳤다. 나를 좀먹는 생각들은 어느새 촘촘한 그물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이 된다. 나는 자책의 먹이가 되고 성실하게 혼이 난다. 그러나 그물의 주인은 나였고 그물의 희생양도 나였다.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알아서 슬프다. 슬프지만 알고 있다. 이 리듬으로 울음을 달랬다. 얼마 전에 본 명상에서 흘려보내기를 연습했는데 그것을 써먹을 때였다. 흘려보내자고 울면서 중얼거렸다. 울 때마다 마음이 시끄러워서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전곡 재생한다. 그중에서 제일 잔잔하고 깊은 노래를 반복 재생했다. 그 노래를 듣던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편안했지만 남은 고민이 울먹임이 되고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이 기분을 흘려보내자. 이것은 진짜 감정이 아니다. 진짜여도 흘려보내면 된다. 지나가는 일이고, 물처럼 흘려보낼 수 있는 생각이다. 숨을 쉬자. 후우. 쓰읍. 후우우. 쓰으읍. 후우우으. 안정과 불안이 오고 갔다. 그 둘에게 온전히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했다. 너무 안정되면 내가 무언가라도 놓칠까 봐 불안하고, 너무 불안하면 오늘처럼 불면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변덕이 아주 심한 나를 달래는 건 언제나 고달프고 짜증 나는 일이다.


결국 밤새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기의 반복이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아침을 맞았다. 내가 울든 웃든 도망치든 버티든 아침은 온다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해가 뜨는 풍경을 보면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울고 불며 살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시끄럽게 외치던 순간이 어제의 일이 된다. 내겐 자정이 되는 것보다 해가 뜨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울던 것이 허무하면 나는 아침을 맞은 거다. 해가 뜬 것이고 흔히들 말하는 ‘현타 맞았다’의 주인공이 된다. 가끔은 울던 시간이 아까워서 자꾸 되새김질하면서 잠에 드는데 그 마저도 아침 햇살에 모두 녹아 사라진다.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랐는데 아침 해를 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얼마나 더 사랑하고 경멸해야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은 해를 보지 않고 잠들고 싶다.

비가 찢어지게 내리니 해를 볼 수 없다.

구름이 암막 커튼처럼 해를 차단했으나 나는 진짜 암막 커튼을 꼼꼼하게 쳐 놓고 침대에 눕는다.


꿈도 없이 푹 자는 것을 언제나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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