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긴 글 #71 - 슬픔의 구간에서

지나갈 거야. 많이 아프겠지만.

by 생강

71.


슬픔의 구간이 반복 재생된다. 우울을 씹어 삼키는 일은 바늘을 삼키는 것과 같다. 이 마저도 지나갈 거다. 꽤 아프겠지만.


아픔을 통과해야만 빛을 본다고 믿던 시기가 있다. 고통이 없으면 성과도 없고 어느 정도 아파야만 괜찮은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하는 생각이지만, 요즘엔 아프지 않고 덜 고통스럽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저번엔 이 정도 아픔으로 이 정도 성과를 냈고, 이번엔 그것보다 덜 아팠으니 더 낮은 성과가 되겠군. 나는 내가 겪은 일을 알뜰하게 쪼개서 현재에 접목시켰다. 내 경험으로 현재를 해석하며 나의 아픔을 기준으로 삼았다.


일반화의 오류 아닐까.

아픔과 성공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덜 아프고 성공할 수도 있잖아.


아예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 알고 있다. 뭐라도 꾸역꾸역 해내야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아주 잘 알아서 힘겹다. 나의 경험을 오늘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이상하다. 알고 있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인데 나는 어제를 통과한 몸으로 오늘을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어제의 일을 끌고 와 오늘 내내 자책하는 것이 나다. 뭣 같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런 나와 평생을 살아야 한다.


이런 반복을 나는 슬픔의 구간이라 부른다. 음원 사이트에서 듣고 싶은 노래만 반복 재생하는 것처럼 나는 우울의 구간을 반복해서 통과한다. 누군가 반복 재생을 해제하지 않는 이상 꽤 오랫동안 그곳에 갇힌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해제할 수 있다.


지나갈 거라는 말을 잘 안 한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싫은 것은 아니다. 지나갈 것은 알지만 그 시간에 갇힌 나는 불안과 고통 사이를 넘나들며 울기 때문에 그 말을 쉽게 뱉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 지나갈 거야. 아주 아프겠지만.’이라고 중얼거린다. 남이 보기엔 쉽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픔을 감수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지나갈 시절이지만, 아주 아파서 아픔의 구간으로 기억할 시절이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너무 불쌍하고 아주 혼자라서 슬프다.


슬픔의 구간에 갇혀 우울이 반복 재생되는 사람은 어떻게 빠져나온지도 모르게 빠져나온다. 그러나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절이고 또다시 내게 다가올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아마 그때도 무지하게 아플 것이다. 과거의 아픔을 가늠하며 고통을 예상하다가 넘실대는 힘겨움에 아마 토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헛구역질을 하며 뒷목을 문지르며 도망치고 싶어서 안달이 날 것이다. 얼마나 더 힘겨워야 원하는 것에 가닿을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생강 긴 글 #70 - 수박은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