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생활, 만만치 않게 되다
성장소설 <낭만 10세> (4)
이사와 동시에 버스통학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서 혹은 차비가 없거나 모자라서, 나는 종종 희수언니와 하굣길을 함께 했지만, 등굣길만큼은 커다란 버스 안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차창 밖에서 수시로 바뀌는 도시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른 세계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날도 기분 좋게 등교를 마쳤다. 3학년 5반 교실에서 '왈가닥 안초아'답게 수업 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교실에는 얼추 80여 명의 아이들이 삐걱거리는 나무 책상과 의자에 의지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무렵 어린이들을 위한 초등학교 사정이 대부분 그랬다. 그런데 그런 여건을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불평은커녕, 그저 아침이면 찾아갈 ‘우리 학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던 시절이었다.
조회 시간이 지났는데도 담임선생님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새 학년, 새 학급이 시작된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반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 만큼 충분히 친해져 있었다. 교실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반장과 부반장이 교탁 앞에 서서 조용히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그때였다. 부반장 영미가 입을 남산처럼 내밀더니 분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칠판 한쪽 구석에 ‘떠든 사람’이라고 써 내려갔다.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교탁으로 뛰어나갔다.
“야! 3분단!”
내 목소리는 씩씩하다 못해 천둥이 치는 듯했다. 순식간에 교실의 소란이 가라앉았다. 아이들은 얼음이 돼버렸다. 내가 분단장으로 있는 3분단 아이들은 자세까지 바르게 고쳐 앉았다. 난 일부러 3분단 앞쪽에 바싹 붙어 섰다. 내가 뿜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위엄을 목청에 얹혀서 외쳤다.
“쩌번에 떠들다 걸려서 우리만 청소한 거, 잊었어? 조용히 하자!”
일주일 전이었다. 부반장의 ‘떠든 사람’ 명단에 3분단 아이들의 이름이 가장 많이 올랐다. 우리 3분단은 단체로 벌을 받았다. 방과 후에 남아서 교실청소를 해야 했다. 마룻바닥에 무릎 꿇고서 왁스 바른 천걸레질을 하기.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운동장에서 오징어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요란한 소리가 내 귀를 고문할 따름이었다.
오징어게임은 놀이라 하기엔 살벌했다. 너무 격해서 정서상으론 멀리 하고 싶었지만 내 신체적, 놀이적 능력이 워낙 탁월하게 빛나서 발을 빼기 어려운 놀이였다. 2021년 가을에 전 세계를 집어삼킨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잔혹한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건, 그 놀이가 본래 과격한 동물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래서였나? 우리 학교에서 오징어게임은 고학년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그 놀이가 '그들만의 게임'으로 고착화 내지는 정형화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다. 더욱이 오징어게임의 승자로 나보다 더 어울릴 자는 보였다.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키도 힘도 우위였다. 물불 안 가리고 들이대는 뱃심과 기차 화통 삶아 먹었을 성량도 가졌다. 나 없이 오징어게임이 운동장에서 펼쳐진다? 그럴 순 없었다. 그 판을 다시 소년들에게 빼앗길 순 없었다.
나는 더 매섭게 3분단을 노려봤다.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난 미소 지으며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인생은 확실히 아름다운 것이었다. 살아볼 만했다. 비록 날마다 감당해야 할 시끄럽고 헐벗은 가정사가 있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내 존재감은 그 모든 현실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나른한 만족감에 취할 무렵이었다. 드르륵 쾅! 누군가 교실 앞문을 거세게 열어젖혔다.
“오호? 5반! 니들이 웬일이냐, 조용할 때가 다 있고?”
날카로우면서도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묘한 목소리, 4반 담임인 김구단 선생이었다. 그녀는 얇으면서 단단한 나무막대기로 탁자를 두드렸다.
탁, 탁, 탁!
공포감을 부르는 소리였다. 우리는 그 막대기가 언제라도 우리의 손등을 내리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김구단 선생은 막대기를 들고 다니다가, 복도에서든 운동장에서든, 혼낼 거리를 귀신같이 찾아내서 학생을 불러 세우곤 했다. 아니, 일단 학생을 불러 세운 다음에 혼낼 거리를 찾아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아무튼 학생은 겁을 집어먹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손!”이라고 짧게 말했다. 손바닥이 아닌 손등을 가지런히 대라는 뜻이다. 막대기로 작고 여린 손등을 내리칠 때면 우리는 어김없이 온몸을 뒤틀었다. 눈물 쏙 나올 정도의 통증이었다. 나는 그해 가을에서야 그 통증을 처음 경험했지만, 익히 그녀의 악행을 들어왔기에 늘 4반 아이들이 불쌍했다. 내가 그 반 학생이 아니어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할 정도였다.
“5반, 잘 들어라! 오늘 너희 담임선생님 못 오신다. 내가 일일 담임이니까 말 잘 듣도록, 알았나?”
김구단 선생은 군인처럼 말하는 습성을 가졌다. 게다가 항상 짧은 파마머리에 건장한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위압적으로 걸어다녔다. 가슴윤곽이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만 아니라면 그녀의 성별을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까지 보아온 여자 어른들 중 그렇게 눈을 부라리며 무섭게 말하는 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어쩌면 김구단 씨가 진짜 남자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뭐야, 넌? 왜 손 들었어?”
그녀의 말과 동시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오른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그 긴장된 순간에 내 오른팔이 어찌하여 우뚝 솟아버린 것인지 빛의 속도로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우선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었다.
“저기⋯, 저희 선생님요, 왜 못 오시나요?”
“... 아프시다, 병원에 가셨어. 너희 5반 선생님이 임신 중인 건 알지? 암튼 그게 좀 잘못됐다는데, 니들은 그런 거 잘 몰라도 되고. 근데 어이! 질문한 애, 너!”
“네에? 저요?”
“그래, 너! 이름이 뭐냐?”
순간, 무슨 거대한 바위가 내 눈앞으로 턱 굴러온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한없이 딱딱하고 무거웠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압도적 힘이었다. 난 분명 움찔했다. 그렇다고 쫄아들긴 싫었다. 무엇보다, 반 아이들 앞에서는 언제나 씩씩하고 용감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네, 안초아입니다!”
“어쭈? 안초아? 안..초아...”
그녀는 자신의 뇌 속 장기기억 보관소에 내 이름 세 자를 또각또각 새겨 넣는 것 같았다. 희한한 건, 내 이름이 그렇게 무섭게 들릴 줄 몰랐다. 여덟 살 때 유령을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됐고. 잘 들어라! 너희 5반만 가정환경조사를 아직도 안 했다."
그녀의 관심사가 가정환경조사로 옮겨갔다. 구원의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 것만 같았다.
"오늘까지 마쳐야 한다. 지금 바로 할 거니까 모두들 고개 숙여라!”
김구단 선생의 호령에 따라 가정환경조사가 시작되었다.
“자, 책상에 엎드리라고! 이제 내가 묻는 말에 해당되는 사람만 조용히 손을 들면 된다. 알겠나? 1번. 자기네 집이 자가주택인 사람?”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전세, 사글세 그런 게 아니라, 음⋯ 그러니까 부모님이 네가 사는 집의 집주인이면 손 들란 말이다!”
아이들은 그제야 알아들었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과는 상관없는 문항이었다. 손을 든 아이는 대여섯 명 정도였다. ‘아싸!’ 나만 셋집 아이로 사는 게 아니었다.
안심하다가 문득, 뭔가 이상했다. 그런 조사를 왜 눈 뜬 상태로 받게 하는지 의아했다. 아무리 책상에 엎드려 있다지만 우리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얼마든지 서로를 볼 수 있었다. 누구네가 얼마나 부자인지, 누구네는 얼마나 없이 사는지 다 공개되는 형국이었다.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집안 형편이 그런 식으로 까발려지는 게 싫었다. 뭔지는 잘 몰라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을 못 찾았다. 구단 씨가 묻는 말에 그저 반응해야만 했다.
김구단 선생의 건조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집에 자가용, 세탁기, 텔레비전, 전축, 라디오, 재봉틀이 있는지 여부까지 조사했다. 묻고 손드는 과정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동안 나는 가만히 있었다. 손을 들 기회가 없었다. 우리 집에 있는 앉은뱅이 나무책상, 작은 글씨 빼곡한 책들은 조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내 귀가 번쩍 열렸다.
“니들이 알까 모르겠다, 아버지가 대학교 졸업했거나 그 이상, 뭐 그 이상은 없겠지만, 암튼 그런 사람은 손 들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가 손 들 일이 생기다니!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란 존재가 고마웠다. 비록 어머니한테 ‘일생에 보탬이 안 되는 인간’ 소릴 듣지만, 그 이상한 가정환경조사 중에 강제수면을 취하던 내 자존심을 확 살려준 능력자였다.
나는 위풍당당하게 손을 들었다가 천천히 내렸다. 김구단 씨의 질문이 빠르게 이어졌다.
“이번엔 어머니 차례. 자, 엄마가 대학 나온 사람?”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잘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까지는 어떻게 알고 있지만 어머니의 학력이라? 그것은 그리 관심을 두지 않은 영역이었다. 당시 우리네 어머니들의 학력에 누가 신경이나 썼을까? 사회 통념이란 것이 여성과 배움의 관계를 멀게만 여기던 시절이었으니.
“선생님?”
나는 다시 손을 들고 질문했다.
“뭐야? 또 너야? 왜?”
“전문대학이면 지금 손 드는 거 맞나요?”
“뭐? 니가 전문대학이 뭔지 알기나 해?”
“네, 2년만 다니는 대학교 아닌가요?”
“우와아!”
아이들이 감탄할만했다. 내 대답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상관없이, 김구단 선생 앞에서 따박따박 설명을 하는 초아가 대단해 보였을 테니까.
“조용, 조용! 입들 다물어라!”
교탁을 탁탁 두드리며 김구단 선생이 격렬히 소리쳤다.
“뭐야? 누가 얼굴 들라했어? 전부 고개 숙여!”
서릿발 같은 고함에 아이들은 다시 납작 엎드렸다.
“전문대 항목은 따로 없으니까 그냥 이번에 손 들어. 그리고 안초아, 너 말야, 질문 같은 거 자꾸 하지 마라, 짜증나게!”
그녀의 목소리는 진짜로 짜증 나 보였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잘 몰라서 물어본 건데 왜 짜증을 내는지...
“가만, 그런데 말이다.”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르게, 김구단 선생은 뭔가 재미난 것을 발견한 사람 마냥 내게 말을 걸었다.
“안초아, 네 아버지 뭐 하시냐? 직업 말야, 직업?”
“교…사요, 국민학교 선생님인데요?”
“어머니는?”
“유치원 선생님이요.”
“오호, 그래? 내참, 대학까지 나와, 부모님 다 교사야, 그런데도 사글세라고? 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니네집에 무슨 문제 있니?”
가까이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짝꿍 창배였다. 나는 창배를 노려봤다, ‘너 죽을래?’의 메시지를 담아서. 그 아이의 얼굴이 금세 허옇게 굳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남의 집 사정을 내 어찌 알겠냐만⋯. 딱하다, 얘, 딱해.”
인생 십 년차에 들은 최고 난이도의 비아냥이었다. 당장 달려 나가 그녀의 볼록한 배를 들이받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저 작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온 힘 다해서 그녀를 노려볼 따름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자신보다 약한 존재 앞에서 유독 강자의 면모를 드러내는 완장형 인간은 어디에나 있었다. 상대방한테서 약점이라 여겨지는 작은 틈이라도 발견하면 부리나케 달려들어 물어뜯는 잔인함까지 갖춘 갑질형 어른 말이다.
“어, 어라? 저, 저게, 어따 대고 눈을 부라려? 너! 이리 나와!”
그때였다. ‘똑똑똑!’
맑고 고운 노크 소리.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누군가 교실 문을 두드려주다니, 어쩜 그렇게 필요한 시점에? 그것도 김구단 선생을 무장해제시킬 정도로 강력한 누군가가!
육성회 회장이자 우리 반 이근희 반장의 어머니가 때마침 찾아온 것이다. 그녀를 보자마자 김구단 선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친절한 표정과 몸짓으로 교실밖으로 달려 나갔다. 우리가 복도쪽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쳐다보건 말건, 구단 씨는 VIP 손님을 모시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덕분에 1교시는 자연스럽게 끝났고 우리에겐 자유가 찾아왔다.
김구단 선생과의 첫 대면이 있은 날 밤. 여느 때처럼 꿈나라 가기 전 기도를 하려는데 머릿속이 무척 시끄러웠다. 낮에 들었던 그녀의 음성이 계속 울렸기 때문이다. ‘니네 집에 무슨 문제 있니?’ 틀린 말 같지 않았다. 내가 봐도 우리 집이 좀 이상했으니까.
아버지는 분명 교사였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줄곧 교사로 일해왔다. 어머니는 유치원 교사를 본업으로 삼되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부업을 병행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했다. 부모 모두가 죽을힘 다해 일하는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우리 집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이사 한 번 할 때마다 방의 크기든 살림살이 개수든 무언가는 줄어들었고, 덩달아 내 호주머니는 줄기차게 새털처럼 가벼웠다.
자꾸만 속에서 미움이란 친구가 고갤 쳐들었다. 이웃을 미워하면 안 된다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어린이주일학교에서 듣고 또 들어왔다. ‘원수까지 어떻게 사랑해? 말도 안 돼!’라고 투덜거린 적은 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실천해 보려고 애썼었다. 하지만 딱 한 번만 그 노력을 멈추고 싶어졌다.
“하느님, 그 선생님요, 정말 싫어요. 불독 같아요. 아니, 진짜 불독이에요. 무슨 선생님이 그래요? 혹시요...애들을 잡아먹고사는 괴물...아닌가요? 미워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요, 저요, 한 달만, 아니 너무 긴가? 그럼 한 주만 미워할래요. 딱 일곱 날 동안만 착한 어린이 안 할래요. 아셨죠?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그런 기도를 올리고 며칠 후였다. 현실을 부정하고픈 일이 터졌다. 학교 생활 삼 년 차에 그런 위기감은 처음이었다. 우리 반 신수자 선생님이 건강을 이유로 휴직하고, 아예 김구단 씨가 우리 반의 담임교사로 온 것이다.
‘드르륵 쾅!’
그 어느 때보다 위력적으로 교실문이 열렸다. 검은색 출석부를 가슴에 품고 터질 듯 달라붙은 감색 원피스 차림의 김구간 선생. 그의 입장은 절대권력자의 등극식 같았다. 우린 사냥꾼의 총구 앞에 선 작은 토끼들 신세였다. 그 토끼들 중 가장 긴장한 사람은 바로 나, 안초아.
‘하나님, 이러시면 안 되죠, 반칙이에요! 너무해요! 제가 미워한다니까 벌주시는 거예요? 이러기가 어딨어요? 안 돼요, 으앙-!’
진짜 울고 싶었다. 물론 울진 않았다. 울음이 후다닥 달아나버렸기 때문이다. 김구단 씨의 분위기가 이상야릇했다. 며칠 전에 나를 향해 무시무시한 적대감을 드러내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내겐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한 아이에게만 향했다. 온종일 “아이구, 우리 근희!”를 입에 달고 다녔다. 덕분에 그녀에게 안초아는 잊힌 존재가 되었다. 내 인생에 암흑기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오히려 봄바람이 불어오다니!
반장 이근희. 바가지를 뒤집어 가지런히 올려놓은 것 같은 헤어스타일의 남자아이. 주변 아이들과 다르게 새하얀 피부에 포동포동한 몸집의 소유자. 날마다 다른 빛깔과 모양의 옷을 차려입고 오는 아이. 누가 봐도 부잣집 아들내미 분위기를 풍겼다. 수업 시간엔 선생님 질문에 대답도 곧잘 하는 학생.
그런데 주변에 어른만 없으면, 즉 아이들하고만 있으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검지 손톱을 물어뜯거나 눈을 자꾸 깜빡였다. 내 눈엔 근희는 덜 자란 열 살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냥 좀 불쌍해 보인다 싶었었는데...
김구단 씨가 담임선생님으로 눌러앉은 그날 방과 후. 친구들과 나는 정글짐에 올라앉아 새로운 커플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야, 새로 온 담임, 이상한 거지, 이상한 거 맞지?”
“맞지, 이상하지. 우리 신수자 선생님은 안 그랬잖아?”
“니네들 아까 청소할 때 불독이 반장 어깨 쓰다듬는 거 봤니? 진짜 좋아하나 봐.”
“야! 초아 화나게 그딴 말하지 마.”
조용히 듣기만 하던 내가 수다판에 등장할 차례였다.
“내가 뭘? 괜찮아, 까짓 거. 어차피 불독이잖아. 왜 불독이겠어? 우리 같은 애들한테는 으르렁거리고 부자들만 좋아하니까 불독이지.”
“맞아 맞아, 반장이 우리 학교에서 젤루 부자니까 알랑방귀 뀌는 거야, 그치?”
자영이가 던진 말이 내 귀에 콕 걸렸다.
“자영아, 근희가 부자니? 걔네 부모님이 부자지, 칫!”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 학교에서 젤루 부자’가 대체 어느 정도의 부자를 뜻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기에 내심 궁금해졌다.
“암튼 걔네 디따디따 부자야.”
근희의 짝인 명진이가 나섰다.
“쩌번에… 뭐드라? 가정? 무슨 조사할 때 반장은 계속 손들었잖아. 내가 ‘너희 집 진짜 부자냐?’ 그러니까 걔가 그랬어. ‘아니. 식모 아줌마가 한 명밖에 없어. 유모도 한 명, 기사 아저씨도 한 명뿐이야.’”
명진이의 말에 우리는 조용해졌다.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봐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걔네 집에 유모, 운전사, 식모가 다 있다는 말이지?”
“집에 운전사가 있어? 왜?”
“유모는 뭔데? 뭐야?”
“반장은 좋겠다, 부자라서.”
아이들은 숨 가쁘게 말을 주고받았다. 근희네 집이 얼마나 부자인지는 짐작도 안 되지만 엄청난 부잣집이라니까 일단은 근희를 부러워했다. 난 그런 아이들 모습이 보기 싫었다.
“야! 그래봤자야. 걔는 선생님 없으면 꽝인 거 몰라? 말도 막 더듬잖아, 우리랑 있을 땐!”
꼴사납게 급우의 흉까지 보고 말았다. 내가 못되게 말하자 아이들은 맞장구를 쳐댔고, 우리는 물불 안 가리고 마구 떠들었다. 마음속에서는 근희를 향한 미안함이 올라왔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그나마 소식 하나가 위로를 주었다. 4반 아이들이 뛸 듯이 기뻐한다는 소식이었다. 모두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김구단 선생의 자리 이동이 누군가에겐 화이트 크리스마스만큼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생뚱맞게도 서무과 직원이었던 남자가 갑자기 4반 담임선생으로 들어왔다고 했지만, 4반 아이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 같았다. 무조건 신나고 자유로워 보였으니까.
------------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