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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vitia J Sep 04. 2022

6월에 눈이 내릴까

 'Snow in June' composed by Tan dun

소리Music, the greatest good that mortals know and all of heaven we have hear below.

- Joseph Addison


음악은 유한자가 알고 있는 가장 최대의 선이며, 땅위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의 모든 것이다.

- 조셉 에디슨


리움 미술관 멤버십 프로그램으로 음악회에 다녀왔다. 삼성인재개발원의 공연장으로 용인 서천에 위치한 곳까지 먼걸음을 했다.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시타인' 혹은 존 케이지의 4분33초에서 헤미Remi의 사운드 아트Sound art까지. 현대음악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퍼포먼스라고 불러야 할지. 순간의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악보가 있어서 동일한 퍼포먼스가 가능한 예술이라, Sound Art로 명명해야 할지. 


현대음악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존재한다. 현대음악을 어디서 부터 시작해 볼까. 현대미술사의 통시성과 연결해 본다.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세잔이다. 세잔은 생 빅투아르 산을 그렸지만 산을 그린 것은 아니다. 원뿔 도형을 밑그림으로 하여 산으로 채색한 것이다. 구체성을 벗고 추상으로 가기 시작했다. 현대미술의 구상성은 지워질 것을 예고하며 한순간의 찰나와 같은 성격을 가진다. 


현대음악에서 '모든것이 음악이다.'Every sound is music 즉 소음noise도 음악, 또는 화음이 아닌 것도 음악의 영역으로 수용하게 되었을 때 시작되었을 것이다. 존 케이지 이전의 현대음악의 시작의 선언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미래주의 음악이다. 루이지 루솔로는 '소음 예술: 미래주의 선언'이라는 표명manifesto을 한다. 미래주의 음악은 사실 미래에 대한 것도 아니고 음악이라고 부르기에도 미약한 아닌 작은 몸짓에 불과했다. 루이지 루솔로는 화가로 그림에서 음을 느꼈다. 회화로 소음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악기도 만들고 곡도 작곡했다. 안타깝게도 전쟁으로 거의 사라졌다. 2차세계대전으로. 폐허위에서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시작된다. 


"소음의 예술은 모방의 재생산으로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소음의 예술은 특별한 음향적 즐거움으로부터 주요 감정적 힘을 뽑아 낼수 있다. 영감을 받은 예술가는 소음을 결합할 것이다."


소음이라는 기호가 사라질 때 현대음악이 시작된다. 화음harmony이 아닌 음악을 감상하기를 어려워한다. 낯설음은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살짝 현대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다. 판단하지 않고 소리에 자신을 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음악은 녹음recoding된 것보다는 실황을 추천한다. 종이를 찢는 소리, 조약돌을 부딪히는 소리, 홈이 파인 플라스틱을 나무로 된 도구로 긁는 소리, 그리고 첼로 소리가 놀라운 세계로 안내한다. 


탄둔(Tan dun)이 작곡한 '첼로와 4대의 타악기를 위한 엘레지: 6월의 눈'을 현장에서 감상했다. 조성음악들 사이에 현대음악이 책속에 책갈피같이 꽂혀있었다. 


음악은 음악이라고 부름에 의해서 음악이 된다. 이것이 현대음악의 빛나는 핵이다. 핵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동의이다. 케이지가 음악회장에 악보를 들고 등장해서 잠시 앉아 있다가 피아노 뚜껑을 연다. 사람들은 연주를 기다리며 의자를 끌거나 헛기침 소리를 낸다. 순간은 4분33초라는 곡의 이름이 된다. 


'6월의 눈'은 현대음악의 동의를 끌어낸 수작이다. 6월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 눈은 하늘에서 억울함을 증명해주기 위해 내리는 눈물이다. 억울하게 처형된 여인을 기리는 희생을 위로하는 노래이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은 것같은 복잡성과 자연스러움의 조화가 나타난다. 종이가 찢어지면서 내는 소리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첼로가 처음에는 곡을 이끌지만 기존에 사용되지 않던 돌과 플라스틱으로 된 타악기도 마찬가지도 첼로와 대등하게 만난다. 화음을 낼 수 있는 악기와 4개의 두드림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곡이 변주된다. 


쇤베르크의 무조음악과 에디슨의 발전으로 인한 음악의 변화는 후에 기술하고 아방가르드 관련 음악에 대해 살펴본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생각한다. 연주하지 않음에 의해서 곡이 탄생했다. 그의 음악을 현재 순간의 음악이라고 부른다. 우연성, 불확정성 그리고 음악과 예술과 삶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것을 통해서 소리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뒤샹이 변기에 자신의 사인을 넣고 화장실이 아닌 미술관에 놓아 두고 작품으로 불러주기를 요청했던 것처럼.


소리의 가능성 실험은 성공을 거둔 듯하다. 요청은 음악으로 승인받았다. 케이지의 영향으로 플럭서스를 언급할 수 있겠다. 한국의 백남준은 여러 대의 텔레비전 퍼포먼스를 기획했는데 음악과, 비디오, 행위예술 및 조각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음악회의 마지막 곡으로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6월의 눈'을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들었다. "생의 약동"이 사리진 듯한 소리가 들렸다. 더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연주자와 같이 호흡을 하면서 들었던 곡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4분 33초의 소음을 반복해서 듣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필립 글래스와 탄둔은 영화음악에서 큰 비중을 자리하고 있고 대중적인 음악으로도 호응을 얻고 있는 작곡가들이다.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인 교차점의 균형이 멋지다. 


'6월의 눈'은 비극의 노래이다. 탄둔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영화음악이 담겨있는 영화'와호장룡'을 보았다. 두 작품이 닮은 점이 있었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질거라면서, 연인을 달랜 청명검을 쥔 소녀는 그녀와 함께 있기를 소망한 그를 두고 성에서 뛰어내린다.  희망은 떨어져버렸다. 헛된 탐욕속에서 타인의 사랑을 파괴한 소녀는 자신의 사랑을 이룰 수 없었다. 


삶이란 그렇게 6월에 눈이 내리기를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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